창덕궁昌德宮, 구중궁궐 속으로(부분)
박상일/ 청주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前略>
창덕궁에 서양식 가구와 실내 장식이 도입된 1908년 무렵에 인정전의 내부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회흑색의 전돌을 깔았던 실내 바닥을 서양식 쪽마루로 교체하고 전등이 설치되었다. 출입문을 제외한 창문 아래의 외벽에 전돌로 쌓았던 화방벽이 철거되고, 대신에 목재의 큼직한 머름대와 궁판으로 바뀌었다. 또 창문 안쪽에 별도의 오르내리창을 설치하고 휘장을 달기 위한 커튼 박스도 만들어지고, 지붕의 용마루에는 대한제국의 상징 문장인 오얏꽃무의 5개가 장식되었다.
월대에는 전면과 좌우 측면에 계단이 있고 임금만이 오를 수 있는 전면부의 어계御階 앞면에는 당초문을 조각하였다. 그 중앙부의 답도踏道에는 봉황을 새겼다. 봉황은 인정전 내부의 중앙 천정과 임금이 앉는 용상 위의 닫집에도 장식되어 있다.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임금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가리개인 곡병曲屛과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 병풍이 있다. 궁궐의 정전에는 반드시 일월오봉병이 곡병 뒤에 설치되는데 이 병풍은 국토를 지키는 오악의 신과 음양의 조화를 의미하는 해와 달의 표현으로 어좌를 둘러 국토와 창생이 임금을 중심으로 하여 국가가 경영된다는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천장 중앙에 설치된 화려한 보개는 오색 꽃구름과 황금빛의 봉황과 여의주가 나무로 조각되어 매달려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구름 위로 봉황이 날아가는 듯하다. 인정전 편액은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양각되었고 액자에는 칠보 무늬를 그렸다. 액자의 네 귀는 구름 모양으로 장식되어 화려하다. 편액의 글씨는 죽석竹石 서영보徐榮輔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인정전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는 상하 월대에 좌우로 네 곳에 놓여 있는 드므이다. 드므란 높이가 낮고 넓적하게 생긴 독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인정전 드므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대접 모양의 물독이다. 밑에 굽이 달리고 옆면에는 세 개의 손잡이 고리가 달려 있으며 청동 특유의 푸른 녹이 슬어 보기에도 예스럽다. 이것은 실용적으로는 방화수를 담아 두는 물탱크이지만 불귀신의 접근을 막기 위한 일종의 벽사 시설이기도 하다. 모두 잠든 밤에 화마火魔가 슬며시 내려왔다가 드므에 비친 자신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는 스스로 놀라 도망을 간다고 한다. 모양은 다르지만 여러 용도의 드므는 다른 궁월에도 거의 설치되어 있다. 속설이긴 하지만 화재 예방으로 숭례문의 글씨를 세로로 쓴 것이나 광화문 앞에 불을 먹고 산다는 해태상을 둔 것을 보더라도 화재에 대한 경각심은 늘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화재는 그치지 않고 있으니 드므가 있다고 방심할 일은 아니다. <後略> (p. 21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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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3-여름(67)호 <세계문화유산 산책 · 6>에서
* 박상일/ 충북 청주 출생, 청주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청주문화원장, 충청북도 문화재위원장, 충북 향토사연구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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