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전봉래는 1951년 이른 봄 부산의 '지하다방' '스타'에서(부분)
정과리
전봉래는 1951년 이른 봄 부산의 "지하다방 '스타'에서 페노발비탈 한 병을 먹음으로써 목숨을 끊"었다11). 전봉건의 묘사에 의하면 그 자살은 철저하게 의식적이었다. 전봉래는 약을 먹은 후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원고용지 두 장"의 "유서"를 썼다. 그의 마지막 장면을 아우는 이렇게 증언한다.
첫 장에서는 연필로 쓰여진 글줄기가 내리다지로 곧게 내려갔습니다만 다음 장에서는 옆으로 흐트러지고 기울어지면서 내려갔습니다. 페노발비탈은 수면제이지만 다량을 복용하면 목숨을 앗아가는 독약이 됩니다. 그 독한 약기운이 두 장째부터는 서서히 거의 시력과 연필을 잡은 손의 힘을 빼앗아 가기 시작한 것이 분명합니다.12)
그는 죽는 과정을 고스란히 남겼다. 그의 죽음은 하나의 '시위(demonstration)였던 것이다.세상에 대한 시위지만 자신에게는 "스스로 택한 죽음을 스스로 택한 죽음으로서 맞이하는 자기 자신의 재확인 작업을 극명하게 기록하13)는" 일이었다.
이 작업 때문에 전봉래의 죽음은 소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동이었다. 이동하면서, 다른 세상의 존재와 다른 세상에서의 인구를 알리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외접하는 '다른 현실', 그리고 '다른 주체'의 탄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전봉건의 마지막 해석,
인간의 삶다운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린 그 암흑의 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어느 누구도 누리지 못한 한가닥 빛의 삶을 획득한 희귀한 생명이었습니다.14)
는 절실한 울림을 갖는다. (p. 109-110)
11) 김동리의 「밀다원시대」에서 자살하는 박운심이 모델이다. 「밀다원시대」는 「실존무」와 더불어 1950년대의 '실종'에 관한 김동리적 텅찰이 적용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12) 『아직도 우리에게 소중한 것』, op.cit., p. 104
13) loc.cit.
14) ibid., p.106
(※ 블로그 註/ 전봉래: 1923~1951, 향년 28세. 시인 전봉건의 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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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4월(412)호 <기획연재 58/ 정과리의 시의 숲속으로> 에서
* 정과리/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 『스밈과 짜임』(1988), 『글숨의 광합성』(2009),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2014)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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