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어서 오세요, 궨당의 세계로(부분)/ 김은정(글·사진)

검지 정숙자 2024. 7. 12. 14:58

 

    어서 오세요, 궨당의 세계로

 

     김은정/ 글 · 사진

 

        제주에는 주봉主峯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측화산側火山이 가족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 마을에서 이웃으로, 가족으로 궨당으로 살아온

제주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던바의 수(Dunbar's number)*로 유명한 인류학자 던바(Robin Dunbar)는 인간이 사회적으로 맺을 수 있는 관계를 최대 150명이라고 주장했다. 절친한 관계는 3~5명, 공감할 수 있는 사이는 15명, 이렇게 인연의 깊이와 관계를 확장해 나갈 때 그 최대치가 150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의든 타의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완벽히 타인과 차단된 채 살아가는 삶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더구나 내 고향 제주에서는 더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축구공을 발로 뻥 차면 탑동 앞바다에 떨어질 만큼 작고, 길을 걷다가도 아는 얼굴 몇 쯤은 부딪치는 곳이 제주다. 서너 사람만 건너면 사돈에 팔촌이 되는 곳. 이웃도 삼촌이라 부르고 이모라 부르는 곳. 제주에는 이들을 가리키는 아주 특별한 관계가 살아간다. (p. 217) 

  * 던바의 수(Dunbar's number)*는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말한다. 100에서 230 사이로 제안되었고 통용되는 값은 150이다. 이 값은 지능에 따라 달라지ㅕ, 고릴라의 던바의 수는 50 정도라고 한다.(위키백과 참조)

 

  "느영 나영 궨당이라", "우리 김 씨와 가까운 궨당이니 인사들 나눌써" 집안 대소사가 열리는 자리에 가면 이모, 고모, 삼촌보다 더 자주 들리는 말이 다름 아닌 궨당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지만 어린 마음에도 어딘가 영 내키지 않았던 애매모호한 관계. 피를 나눈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혈육 못지않은 깊은 인연으로 엮인 특별한 호칭. 궨당의 어원을 살펴보면 보살필 '권' 과 무리 '당'을 합친 권당의 제주어로 친척과 외척을 아울러 가리킨다. 또 누군가는 거둘 '권', 집 '당'을 써서 생겨난 '권당'이라고 풀이하는가 하면, 제주 고유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의 해석이 이토록 다양하니 그만큼 궨당이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궨당의 법위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궨당에도 분류가 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쪽으로 각각 맺어진 궨당을 '성펜궨당' '웨펜궨당'이라 부르고, 남자가 결혼 후 처가 쪽과 맺은 궨당을 '처궨당', 여자가 남편의 집안 쪽 사람들을 부를 땐 '시궨당'이라고 말한다. (p. 119-220)

 

   다정한 나의 궨당이여

  사람 사는 세상이야 다 똑같을 텐데, 왜 유독 제주만 궨당 문화가 뿌리 깊은 것일까. 방송을 통해 만난 어느 제주 출신 사회학자의 대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제주에는 육지와 같은 계층의 구분이 없었다는 것. 다시 말해 지주와 유지, 대부호와 같은 상위 계층이 없기에 자연히 부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힘든 삶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가난했고 모두가 평등했기에 돕고 나누며 살았던 것이다.

  거친 돌밭을 일구며 시쿰한 땀 냄새를 나누고 허리가 휘어져도 남의 일이라며 나 몰라라 하지 않는 제주의 궨당. 오래된 삶의 풍토 위에 시간과 인연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그 인정人情의 탑은 익명의 친구 맺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시대에도 끄떡없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각박한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주며, 누군가의 든든한 어깨가 되어주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름보다 더 다정하게 당신을 부르며, 당신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의 궨당'이라고. (p. 223-224)

 

  * 블로그註 : 사진과 남은 글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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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4-여름(102)<보롬코지 SARAM 수다 - ②> 에서

 * 김은정/ KBS 제주방송국 편성제작국 방송작가, KBS 네트워크 공동기획 '문화스케치', 콘텐츠 안테나 등, 4.3 등 제주 역사 및 제주문화 관련 다큐멘터리 작가, 한국 PD연합회 이달의 PD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최우수상, 제주문화예술재단 해녀문화예술창작 사업 공모 최우수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