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 살던 삼양교회 골목길에서 참죽나무가 하루 종일 열심으로 하던 일
채상우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내내 있고
바람 불면 바람이 불어 가는 쪽으로 잠깐 손길을 내밀다 있고
발치에 민들레 피면 홀씨가 흩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고
날이면 날마다 계란 장수가 꼬맹이가 아저씨가 중학생이 폐지 줍는 할머니가 바람 빠진 구루마가 골목 너머 아주아주 안 보일 때까지 내다보고 있고
문득 둘이 와서 꼭 껴안고 있으면 그러나 보다 있고
누가 혼자 와서 울면 다 울 때까지 한참 우두커니 있고
밤이 되면 밤처럼 꾸역꾸역 거기 있던 대로 그대로 있고
그렇게 있는 일
그냥 그렇게 있는 일
-전문(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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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4-여름(96)호 <신작시> 에서
* 채상우/ 2003년 『시작』을 통해 시 부문 등단, 시집 『멜랑꼴리』『리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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