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나의 멱살에게/ 정호승

검지 정숙자 2024. 7. 26. 12:45

 

    나의 멱살에게

 

     정호승

 

 

  이제는 누가 내 얼굴에 침을 뱉아도

  멱살잡이하지 말고 그대로 끌려가라

  도둑으로 몰려 멱살 잡혔을 때처럼

  끌려가지 않으려고 앙버티지 말고

  침이 튀고 단추가 떨어지고 구두 한 짝이 벗겨져도

  멱살 잡힌 채로 웃으면서 끌려가라

  그동안 느닷없이 멱살 잡히는 일만큼

  서러운 일 또 없었으나

  이리저리 멱살 잡힌 채 끌려 다니느라

  눈물 또한 많았으나

  이제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는 없다 

  결국 시간에게

  저 늙은 시간에게

  오밤중에 멱살 잡혀 끌려갈 줄은 나도 몰랐다

  어디로 끌려가는지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도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끌려가면

  보고 싶은 어머니가 고깃국에 저녁을 차려놓고

  다정히 기다리고 있지 않겠느냐

     -전문(p.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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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현실』 2024-여름(96)호 <신작시> 에서

 * 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 출생-대구에서 성장,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슬픔이 기쁨에게』『외로우니까 사람이다』외 다수, 대구에 '정호승문학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