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시에스타
최금진
잠자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한다
누가 이 외투 속에 갇힌 몸을 열어줄 것인가
꽃들은 혀를 내밀고 헐떡인다
오후는 제 무게만으로 무거워지고
그는 공중에 버려져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밖에
살 것인가, 뛰어내릴 것인가, 깨어나지 않도록
잠 속에 날개를 결박하고
죄수처럼 웅크릴 것인가
잠자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동안
순식간에 잠이 왔다 가고
잠은 어느 것에도 기대하는 바가 없다
-전문(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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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4-여름(96)호 <신작시> 에서
* 최금진/ 2001년 『창작과비평』 제1회 신인 시인상, 시집 『새들의 역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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