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미워지는 밤/ 이미산

검지 정숙자 2024. 7. 5. 17:17

 

    미워지는 밤

 

     이미산

 

 

  잠들기 전 꺼내보는 얼굴 하나

 

  여긴 종일 비가 왔어요 당신도 비를 맞았나요

 

  어두워지면 당신을 불러보죠 그곳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생의 매듭이 된 희미한 당신

 

  미소로 시작된 우리의 처음이 있었고

 

  미소로 주고받은 뜨거운 질문이 있었고

 

  질문을 따라 간 낯선 동굴 실패를 걸어놓고 사랑이라는 게임을 하고

 

  수없이 들락거렸죠 물방울 뚝뚝 떨어졌죠 나는 어제 내린 빗물이라 하고 당신은 아담과 이브의 눈물이라 하고

 

  신은 언제나 동굴의 자세로 나를 안아주었죠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의 동굴 이후라는 그리움

 

  이제는 혼자 걷고 있죠 우리의 비 수억 년 떨어지는 그 물방울

 

  한때 미치도록 궁금했던 모든 당신 자꾸만 희미해지는

 

  이런 내가 미워지고 있죠

     -전문(p. 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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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터 동인 제6집 『시 터』 2021. 10. 22.  <한국문연> 펴냄

 * 이미산/ 2006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아홉 시 뉴스가 있는 풍경』『저기, 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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