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답
윤경재
카메라를 메고 다닐 때
나는 천수답이 되는 거였다
햇살이 소나기로 쏟아져 내려도
나의 얄팍한 감광지는
찰나 한 조각만을 겨우 건질 뿐
그와 나 사이의 프레이밍
아무리 절묘하게 구도를 이리저리 잡아도
없는 것을 찍을 재주는 없다
나는 천수답, 주는 것만 받아먹을 뿐
인공강우는 실험실에서만 가능한 일
돌아와 초록빛 여행을 정리하면서
그때의 향기와 마음이 못내 아쉬워
또다시 떠남을 떠올린다
빛의 진심은 다 보여주는 데 있지 않고
한 꺼풀 감추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전문(p.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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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6집 『시 터』 2021. 10. 22. <한국문연> 펴냄
* 윤경재/ 2007년『만다라 문학』 & 2008년『문예사조』로 등단. 2018년 2월~현재 ⟪중앙일보⟫ '나도 시인' 시와 해설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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