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축제
김병권
비가 오옵니다 수직으로 깨끗한, 파티를 합니다
파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방울 머금은 꽃잎에게 물어봅니다
먹은 것도 아니고 먹지 않은 것도 아닌
한 모금 물 같은 것, 입에 넣은 뒤 오래 젖게 하는 것,
삼키지 않고 가만히 음미하는 것,
호박꽃의 이름값과 버석 말라 가는 참외 줄기와
땅속 비벼 간질거리는 오이 가지 뿌리들,
연록빛 깔고 앉아 온몸 푸르도록 머금은 텃밭의 생명들과
빗소리에 어울리는 에스프레소 한 잔,
스친 것도 아니고 스며든 것도 아닌
한 줌 흙과 바람의 소리 같은 것, 살아 숨 쉬는 하늬바람 살결 닿는 것,
뼛속 마디까지 빌려 흠뻑 취하는 것,
박새 울음 값과 논 가 부리 숙여 거니는 흰 왜가리
솔잎 떨어진 거지에만 앉아 우는 까마귀 떼,
숲속 생 호흡하는 가슴 깊은 짐승들과,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떠올린다면
당신에게 나는 어떤 피티여야 할까요
물 위로 또 비가 내립니다
-전문(p.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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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목문학회 사화집 『즐거운 곡선에서 배회 중』에서/ 2023. 8. 10. <파란> 펴냄
* 김병권/ 2014년 『서정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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