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서의 비평가, 혹은 비평가로서의 독자(발췌 셋)
임지훈
비평가는 잘 훈련된 독자이자, 그와 같은 해석상의 난맥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에 숙달된 존재이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독자로서의 비평가란 작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일련의 답변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답변은 다만 불완전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품 내에 존재하는 해석상의 난맥에 대한 일종의 불완전한 마개이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비평가가 던지는 질문은 늘 이와 같은 작품 내의 해석상의 난맥을 향해 있지만, 근원적으로 이 소실점은 일정한 답변에 의해 닫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최인훈의 『광장』과 같은 소설에 있어 명준의 죽음에 대해 일정한 답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른 관점을 통해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답변을 내놓고자 시도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답변은 이 해석상의 난맥, 혹은 의미의 망실점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 뿐이며, 설령 일시적으로 이 지점에 완전하게 합치되는 해석을 내놓는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해석은 일시적 봉합조차도 특정한 시점 속에서 발생하는 착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질문과 임시적인 답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적 적층을 구성하며, 그 역사를 우리는 문학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 47-48)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완전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발상은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의미를 향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신비평 시대의 환상이다. 현대의 비평적 관점의 의의는 작품에 대해 확립된 하나의 의미망을 승인하는 것에 달려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와 같은 의미망이 특정한 관점에 따라 직조된 부분적인 것임을 파악하고, 동시에 그와 같은 부분들을 모두 모아도 총체로서의 의미가 구성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독자로서의 비평가란 작품 내에 존재하는 의미의 소실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특정한 관점에 기인한 답변을 내놓는 동시에, 그와 같은 답변이 특정한 관점에 따라 구성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숙지하는 자여야만 한다. 예컨대, 자신이 내놓은 답변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 지금 시대의 비평가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조건인 셈이다. (p. 48-49)
비평이 한 사회에 있어 유의미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결코 특정한 지식의 체계에 의해 승인된 작품성과 윤리성에 대해 다수의 비평가들이 동조하는 상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정한 담론의 체계에 기인해 작품을 평가하고 그와 같은 작품을 통해 체계적인 지식을 재생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유의미한 판매량을 보이는 다양한 작품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비평이 시도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6) 예컨대, 비평의 대상은 특정한 담론의 체계에 따른 지금의 방식을 넘어 보다 넓은 범위로 거듭 확장되어야 한다. 알고 있는 지식으로 모든 것을 억지로 설명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이해가 불가능한 현상과 그 이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보다 정신분석학적인 의미에서 말하자면, 비평가는 활자로 된 모든 텍스트에 대해, 히스테리적인 태도에 기인한 지식의 추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p. 56)
6) 이와 같은 비평적 텍스트의 범위에는 단순히 순문학이 아닌 것만이 포함되지 않는다. 예컨대 웹소설이나 BL 소설과 같은 장르적 특성이 두드러진 작품들뿐만이 아니라 신문 기사나 에세이, 심지어는 철학서에 이르기까지 보다 폭넓은 분야에 대한 포괄을 가리킨다. 그간의 문학 비평이 하나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논평하는 것에 주력해 왔다면, 반대로 문학작품에 의지해 더 넓은 범위의 텍스트들에 대한 확장된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학을 포함하는 장의 영역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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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2-겨울(27)호 <issue 독자> 에서
* 임지훈/ 2020년 ⟪서울신문⟫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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