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
시아(SIA)
나는 오래된 집에 산다
생나무를 때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렇게 튼튼한 나무들 사이에서
이제는 주인을 잃어버린 집
나는 나무의 나이테를 세어 보며
시간을 짐작한다
지붕은 비가 새지 않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아버지는 생전에
술을 좋아하셨다
할아버지는 평생
술을 담그셨고
아버지는 평생
술을 받으셨다
나는 아버지가 심어 둔 나무의 가지를
하나씩 흔들어 본다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가지를 아주 많이 펴야 한다
지붕의 이끼는 매년
풍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며 아버지는 자주
바람 속에 나무의 나이테가 없다고
노래하셨다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엔 누구나
집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집에 살면서부터
나는 점점
집처럼 되어 간다
이 집에 살면서부터
나는 점점
집이 되어 간다
-전문(171-173)
▶ '기술창작시대'의 문학과 인공지능(발췌)_ 김언/ 시인
지난 8월에 나온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다시 펼쳐 본다. 잘 알려진 대로 『시를 쓰는 이유』는 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SIA)'를 활용해 나온 시집이다.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와 카카오브레인이 공동 개발한 시아는, 시집 소개글에 따르면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탄생했으며 "인터넷 백과사전, 뉴스 등을 읽으며 한국어를 공부하고, 약 1만 편의 시를 읽고서 작법을 배워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시를 쓰는 이유』라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세세한 과정, 그러니까 데이터로 입력되는 시편들에 대해 어떤 전처리 과정과 후처리 과정을 거쳤는지가 궁금하지만, 여기에 대한 논의는 잠시 보류해 두고 우선은 작품에 대해서 의견을 보태고자 한다. 「오래된 집」은 시집에 실려 있는 시편들 중 무난하게 읽힐 만한 작품으로 꼽아 본 것이다. (p. 171)
제목 그대로 "오래된 집"을 모티프이자 키워드로 삼아 작성된, 아니 생성된 작품이다. 아버지를 여읜 화자가 아버지와의 추억이 녹아 있는 "오래된 집"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문맥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군데군데 인상적인 표현("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가지를 아주 많이 펴야 한다// 지붕의 이끼는 매년/ 풍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이 눈에 띄는 것과 더불어 궁금증이 생기는 대목도 있다. 왜 이 집에서는 어머니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일까?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그들의 손자이자 아들로 짐작되는 화자, 이렇게 삼대에 걸친 기억에서 왜 어머니나 할머니 같은 여성 가족에 대한 기억은 빠져 있는 것일까? 이 시의 특징적인 구도이기도 한 부계로만 이어지는 삼대가 조금 더 설득력 있게 제시되기 위해서도, 조금 더 풍성하게 시상이 확장되기 위해서도 어머니와 할머니의 존재가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배경으로 깔릴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당연한 듯이 생략된 점이 다소 의아하게 남는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쓴 시라고 전제할 때 생기는 의문일 수 있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시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접어 두고 다시 보면 의외로 놀랍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특히 한 편의 완결된 작품으로서 일정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점이 놀랍다. 실제로 이 시는 핵심어인 "오래된 집"을 중심으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시간에 대한 사유가 점층적으로 확장되다가 결말에 가서는 "오래된 집"에 대한 화자의 동일화된 감정이 도드라지면서 마무리되는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시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보여 주는 작품은 아닐지라도, 핵심어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시상을 전개해 간다는 점에서 기본에 충실한 보법을 보여주는 시라고도 할 수 있다. (p. 17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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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22-겨울(27)호 <criticism>에서
* 김언/ 1998년『시와 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백지에게』『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한 문장』『모두가 움직인다』『소설을 쓰자』『거인』『숨 쉬는 무덤』, 시론집『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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