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지나간다 외 1편 이재연 이제 어디에도 지난날은 없다 순식간에 여름이 사라지고 포도알에서 술맛이 난다 술맛을 알고 생활을 이기려고 했지만 나를 이기려고 했지만 결국 잃는 것은 나였지만 입술 끝에 허망한 것들이 매달려 있다 마른 잎사귀를 털던 바람도 햇빛도 한번은 죽어라 바라보고 싶은 감정으로 아직 영원을 발명 중이다 정말이지 죽어서도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신을 죽이는 것보다 신을 꿈꾸는 것이 낫다 목줄을 길게 풀어놓은 아이들이 지나간다 느닷없이 입에서 신맛이 난다 눈을 감고 신맛을 삼키면 어른이 되어 있다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세상을 조금 앓은 나이 어린아이는 짐을 싼다 멀리 강원도로 갈 것이라고 이 추운 겨울 저녁 허투루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이는 짐을 싼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