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외 1편
김이녘
안에서 바람이 불어 나온다. 그림자들이 흔들렸다
몸 밖의 것들이 핼쓱해졌다
장도리들을 꺼내는 소리들이 분주하였다, 방문이 쪼개진다
사람들이 얼룩지며 소란해졌다
의자에 걸쳐둔 종아리가 덜렁거린다
지붕을 굴렀다. 잠을 설쳤다. 진드기가 속눈썹을 타고 있다.
상수리 깍지가 바스러지는 소리. 숲을 헤집었다.
무릎께에서 자빠지는 비석.
숲 개미들이 산새의 깃털을 실어 날랐다.
깔끔하게 핥아낸 사발 조각을 머리 위에 얹고 걸었다
조부의 아들들과 조모의 딸들이 남긴 인사를 받았다.
탯줄은 목에 감고 죽는 거란다
새로 해 넣은 관을 파냈다.
고라니가 죽은 자의 옷가지를 씹었다
덜렁거리는 발목에 아무개 之 墓를 새겨 넣었다, 破卯*
꺼진 무덤 위에 상수리를 파묻었다.
뱉어낸 고깃덩어리에서 김이 올랐다
-전문(p. 56-57)
* 破卯: 날이 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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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를 팔았다
물이 일었다.
쪼그라진 손등으로 빈약한 물항아리 앞섶을 두드렸다.
그거시 느그 신어미여.
엄마가 하나 더 생겼다
물항아리 속에서 돌아 나오는 골목길, 한 여자를 만났다. 그에게 나가는 길을 물었다.
버스 길을 찾아 길을 돌다가 다시 마주쳤다. 얼굴이 없는 흐릿한 머리통. 여자의 반짝이는 구슬가방. 딸을 판 여자는 스치는 그의 말을 들었다.
팔고 온 것을 되가져오믄 온 길도 못 찾을 것이여.
찰랑이는 물항아리를 치마폭에 품은 채, 버스길 없이 하룻길을 무릎이 헐도록 기어 돌아왔다. 간수가 일렁이던 항아리 속에 능선이 아홉 자락. 하나 넘을 때마다 딸은 손가락을 하나씩 씹어대어 남은 것은 검지 하나. 죽은 엄마 대신 남은 엄마가 항아리에 물길을 두드려 주었다.
낮달의 맛은 짜고 써서 밤이면 낫처럼 고붓해지도록 말을 갉았다.
-전문(p. 96)
* 간水 : 습기가 찬 소금에서 저절로 녹아 흐르는 짜고 쓴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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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더께』 에서/ 2023. 12. 5. <한국문연> 펴냄
* 김이녘/ 2000년 『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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