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송종규

검지 정숙자 2012. 2. 9. 02:35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송종규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가난한 애인들이 종이컵을 감싸 안는 겨울밤에

  성에 낀 창가에 별빛이 달려와 수북수북 쌓이는 집요한 밤에

 

  넘기지 못한 페이지처럼 낯선 발자국들이 해안선 쪽으로 달려갈 때

 

  내가 나는 一群의 바다는 공중 높이 펄럭이며

  진물 마른 자리마다 환한, 그 꽃핀 자리를 더듬더듬 읽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빛의 손들이

  시간의 층계마다 수천 겹의 앙상한 나뭇잎들이 고요히 엎드려 있는 공

중에

 

  바람과 얼음을 주제로 천만 번의 필사를 거치고 나서

  마침내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한때 그는 극진한 푸른빛의 일부였다

 

 

  * 『현대시학』2012-2월호 <신작특집>에서

  *  송종규/ 경북 안동 출생, 1989년 『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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