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스크랩] 술래잡기

검지 정숙자 2012. 1. 11. 10:56

 

 

 

술래잡기

 

 

황희순

 

 

 

 

커튼 사이로 칼날 같은 햇살이 들어온다

세상과 통하는 길이 저랬다, 좁은 그 길을 여닫으며

칼날 같은 말과 눈빛만 오래 주고받았다

꼭꼭 커튼을 여미지만 여민 틈새로

더욱더 예리한 빛이 스며든다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커튼을 열지 않을 거야

살을 파고드는 빛은

들숨과 날숨으로 천천히 삭이면 돼

낮은 천장에 닿은 숨 절절 녹아내리는, 여기는

아늑한 무덤

아들아, 어미의 실종을 말하지 마라

영원히 종적을 감추고 싶지만, 꼬리가 너무 길어

비어지려는 징그러운 이 긴 꼬리를

손에 둘둘 말아 쥐고, 잠시

칼날을 피해 숨어있을 뿐이니, 아들아

어미의 무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문학청춘> 2011. 가을

 

출처 : 황희순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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