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황희순
커튼 사이로 칼날 같은 햇살이 들어온다
세상과 통하는 길이 저랬다, 좁은 그 길을 여닫으며
칼날 같은 말과 눈빛만 오래 주고받았다
꼭꼭 커튼을 여미지만 여민 틈새로
더욱더 예리한 빛이 스며든다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커튼을 열지 않을 거야
살을 파고드는 빛은
들숨과 날숨으로 천천히 삭이면 돼
낮은 천장에 닿은 숨 절절 녹아내리는, 여기는
아늑한 무덤
아들아, 어미의 실종을 말하지 마라
영원히 종적을 감추고 싶지만, 꼬리가 너무 길어
비어지려는 징그러운 이 긴 꼬리를
손에 둘둘 말아 쥐고, 잠시
칼날을 피해 숨어있을 뿐이니, 아들아
어미의 무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문학청춘> 2011. 가을
출처 : 황희순의 섬
글쓴이 : 섬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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