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비가역 회로/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12. 2. 9. 02:23

 

 

    비가역 회로

 

     정채원

 

 

  터진 풍선에 볼을 비비랴 금간 꽃병을 안고 잠든들 꿈만 젖을 뿐 깨진

항아리는 깨진 항아리, 세상에는 뚜뚜팡팡크크가 존재한다 신이 존재한다

수맥도 자석도 나는 믿지 못하겠다 차라리 너의 모자를 믿는다 모자는 수

시로 변하는 네 눈빛을 가려주는 것 모자는 언제나 같은 표정이다 일관성

있는 것에 나는 열광한다 사용법도 모르면서 아무 단추나 누르지 마라 여

우울음 울지 못하는 여우목도리가 겨울밤 성대수술이라도 한다는 거냐 수

술 칼을 들고 아무 코나 베지 마라 바가지는 바가지 더 이상 지붕 위의 달

빛에 뒤척거릴 수 없다 넓적한 잎사귀를 빗방울에 흔드는 고무나무가 될

수 없어 타이어는 오늘도 아스팔트 위를 달릴 뿐이다 닳아빠질 때까지 구

멍 난 가슴을 안고, 오, 구두여, 너는 무슨 죄로 오늘도 법정에 불려다니느

냐 날짐승과 들짐승 사이에 낀 박쥐처럼 캄캄한 지구에 거꾸로 매달려 말

라가는 장미며, 향기는 네게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현대시학』2012-2월호 <신작특집>에서

  *  정채원/ 서울 출생,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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