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들의 여행법 1/ 장석주 야만인들의 여행법 1 장석주 우리는 멀리서 온다. 멀리서 오기 때문에 우울하지 않고 다만 거칠고 성마른 상태일 뿐이다. 멀리서 오기 때문에 우리 트렁크에는 비밀과 망각들이 없다. 우리는 당신들이 흔히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그런 부류다. 우리는 멀리서 온다. 그것은 과거로의 이동,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6.01
돌의 환幻 / 이재훈 돌의 환幻 이재훈 부러진 돌부리에 채인다 굴러다니는 돌이 아니라 올곧게 서 있다가, 부러진 돌 창과 칼 혹은 바람이 돌의 몸을 반 동강 냈을 것이다 사방이 어둠이었고 나를 길에 내던졌던 사람들의 눈빛만 어둠 속에서 반짝하던 밤들이었을 때 발바닥 돌덩이가 내 존재를 떠받칠 때가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6.01
고요한 통증/ 이화은 고요한 통증 이화은 그들의 시선이 내 눈동자를 꿰뚫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간단히 뒤통수를 통과한 시선이 뒷사람의 눈동자에 뒷, 뒷사람의 이마에 가슴에 허벅지에 닿기 위해 그들은 내 이마와 가슴과 허벅지를 몇 번인가 꿰뚫었다 나는 유령인가 내 몸이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6.01
하현/ 이영애 하현 이영애 깊은 호수로 빠진 달 바닥에 흡반처럼 붙은 달이 서늘하다 돌을 던지자 화들짝 놀란 물이랑 겹겹이 달 쪽으로 쓸리며 달이 야 윈다 유빙처럼 떠돌던 별들이 난간 위에 한 호흡 내려놓는다 서쪽에 잠들지 못한 비명이 있다고 누군가 말한다 나는 돌아오지 못한 비명처럼 지금..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5.22
별의 자리/ 양수덕 별의 자리 양수덕 쌀 나방들이 벽을 붙잡고서 땀을 흘린다 눈에 띄는 대로 압사시키려는 나와 도망 다니는 그들 사이는 허공도 벽이 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자리만 바꿔가면서 쌀 나방 못지않은 미물들이로군 허공도 벽인 관계들, 그래 참다못해 면상 없는 허공에 발길질하는군 그녀의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5.15
말(言) 버리고 가기/ 황희순 말(言) 버리고 가기 -팔순 엄니의 벽장다수(拍掌大笑) 황희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지 왜 메고 가나' -『금강경』해설에서 아이구 야덜아 글메…… 5층 할망구가 콩국수를 했다고 불르걸래 갔 더니만 동네 늙은이덜이 다 뫼였더라 콩국이 너머 뻑뻑해서 메느리더러 물 좀 가꾸오..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3.13
사과의 몰락 / 윤영숙 사과의 몰락 윤영숙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박혀있는 사과를 보았다 사과는 별이 되고 싶었을까 몸피 닦아내자 몇 억 광년 건너와 총총 박힌 별들의 고백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별이 사과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울퉁불퉁한 별자리를 토막 내자 몇 번의 서릿발로 익혀 꿀을 쟁인 사과의 심..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3.09
愛馬의 눈물/ 전순영 愛馬의 눈물 전순영 왕건이 견훤과 전쟁에서 포위되자 신숭겸이 자기 옷을 벗어 왕에게 입 혀 피신시키고 자신이 왕의 옷을 입고 견훤과 싸우다 전사했다 신숭겸의 목이 견훤에게 바쳐지자 이제야 원수를 내 손에 넣었노라고 만면에 웃음 흘리며 살펴보니 그 머리는 왕건이 아니었다 이..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3.09
징/ 조경선 <등단작> 징 조경선 멍석을 만드는 아버지 손은 언제나 점에서 시작합니다 점은 빙빙 돌아 지푸라기로 풀려 나갑니다 물 한 모금 입에 물어 볏집에 확, 뿜으면 볏집은 스스로 숨을 죽이고 외길 마디마디 멍석의 눈이 됩니다 한평생 양손 비벼 날실 새끼줄 꼬면 손에 땀이 말라 손가락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3.08
꽃의 탄생/ 윤의섭 꽃의 탄생 윤의섭 불면이란 밤새 벽을 쌓는 일이다 감금, 꺼지지 않는 가로등처럼 뜬 눈으로 견디는 밤과 새벽 사이의 생매장 길 잃은 바람이 어제의 그 바람이 같은 자리를 배회하고 고양이 울음은 있는 힘을 다해 어둠을 찢는다 이 터널은 출구가 없다 어떤 기다림은 질병이다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