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박미라_시 정신의 방향, 방황에 대한 소고(발췌)/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나딘 스테어

검지 정숙자 2021. 8. 18. 14:37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딘 스테어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생보다 좀 더 바보가 되리라

  가급적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더 자주 여행을 하고

  더 자주 석양을 구경하리라

  산에도 자주 가고 강에서 수영도 즐기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고 콩 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분별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리라

 

  아 나는 이미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산다면 그러한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그리고 실제적인 순간들 외의

  다른 의미 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에

  오직 이 순간만을 즐기면서 살아가리라

 

  지금까지 나는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지만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한결 간편한 차림으로 여행길에 나서리라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지내리라

  무도회장에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도 더 많이 꺾으리라

      -전문-

 

  시 정신의 방향, 방황에 대한 소고小考(발췌)_박미라/ 시인

  필자는 이 글을 인터넷에서 만났다. 결국 그 또한 첨단문화의 혜택이니 부정할 수 없는 문화의 수혜라고 하겠다. 86세의 나딘 스테어라는 평범한 할머니가 쓴 이 글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이런 글 앞에서 시의 구성이나 완성도 따위를 짚어보자고 덤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의 글을 읽어보면 세상의 어떤 첨단 문화도 대신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 그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AI가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고 콩 요리는 덜 먹으"라고 일러주겠는가. "오직 이 순간만을 즐기면서 살아"가라는 비능률적인 처방을 내리겠는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사람"은 AI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지내"면 어떤 병에 노출되고 어떤 형태의 상처를 입을 수 있는지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할 것이다. '데이지 꽃도 더 많이 꺾으'면 그런 쓸데없는 노동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줄 것이다. 순간만을 즐기며 살아가는 삶을 무계획하게 삶을 낭비한다고 나무랄 수도 없고, 청소기를 두고 빗자루를 집어 드는 손을 보고 혀를 찰 수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을 즐기는 자신만의 척도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선택하는 길이 지금보다 더 나은 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러나 명확한 답이 없는 이 질문에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길을 걸었는가 보다 그 길을 어떻게 걸어왔나 하는 것이다. 얼마나 즐겁게, 가슴 설레며 살았느냐가 인생의 의미를 결정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AI의 대답이 궁금하다. 정서와 감정을 걷어낸 기계의 대답은 인생을 생각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p. 시 15-16/ 론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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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시와문화』 2021-봄(57)호 <특집-시, 첨단 문화의 수용과 비판>에서

  * 박미라/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울음을 불러내어 밤새 놀았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