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류경_2020 노벨문학상 작품 읽기(발췌)/ 한여름 : 루이즈 글릭

검지 정숙자 2021. 8. 22. 18:51

 

    한여름

 

    루이즈 글릭(Louise Gluck)

 

 

  이런 밤이면 우리는 채석장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남자애들이 놀이를 만들어 여자애들의 옷을 벗기곤 했다

  여자애들은 지난 여름보다 한껏 자란 몸을 자랑하며

  그리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대담한 아이들은 높은 곳 바위에서 물을 향해 뛰어들었다

 

  밤은 촉촉하게 물기가 있었으며 바위들은 차갑게 젖어 있었다

  우리가 보지 못한 먼 도시들의 높은 빌딩을 짓고

  묘지를 장식하러 채굴되던 대리석이었다

 

  구름이 낀 밤이면 시야가 좁았다. 그런 날에 바위에 올라가면 위험했다.

  하지만 우리는 위험을 찾으러 집을 나선 것이었다

  여름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남녀 짝을 지어 하나둘 사라졌지만

  마지막까지 짝을 짓지 못한 아이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망을 보거나

  다른 아이들처럼 짝지어 숲으로 사라지는 척을 하기도 했지만

  나무 사이에 숨어봤자 아무도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집을 나서서 채석장으로 향했다

  어느날 밤에는 자신들에게도 행운이 따르리라

  운명이 얼굴을 달리하리라, 믿으면서

 

  하지만 밤의 시작과 끝에 우리는 항상 다 함께였다

  저녁에 집안일을 돕고 가장 어린 동생들이 잠이 들면

  우리는 자유로웠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도

  어느 밤에 숲에서 모일지 다들 알았다

  한두 번 여름이 끝나면 그 은밀한 밀회에서

  갓난아기가 태어나기도 했다

 

  그런 밤은 끔찍했다. 혼자서 밤을 보내는 것처럼.

  놀이는 끝나고 우리는 담배를 피우며

  그날 밤 모이지 못한 아이들을 걱정했다

 

  그리고 들판을 건너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에는 항상 농사를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이면 우리는 다시 아이들이었다

  집 현관문 앞 계단에 앉아서 복숭아를 먹고

  그것만으로도 입을 가졌다는 게 영광스러웠다

  그리고 들판으로 나가서 농삿일을 도왔다

 

  한 남자아이는 이웃 노인을 위해 선반을 만들어 주었다

  그 집은 아마 신이 산을 빚을 때 함께 만든 것처럼

  오래되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고 우리는 밤을 기다리며 꿈을 꾸었다

  저녁놀을 보며 현관문에 서서 그림자들이 늘어지는 것을 보았다

  부엌에서는 누군가가 항상 더위에 대해 불평을 하고

  빨리 밤이 오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더위가 사그라들고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너는 그날밤 만날 여자아이 또는 남자아이에 대해 생각했다

  숲에 들어서서 땅에 누워서 수영 동작을 연습했다

  가끔은 밤이 어두워 상대방이 보이지 않아도 그 아이를 대신할 사람은 없었다

 

  여름밤은 은은히 빛났다. 들판에는 반딧불이 반짝였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별들이 말을 걸었다

  '너는 네가 태어난 이 마을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부위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겠지만

  항상 네가 등지고 떠난 이 마을을 그리워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도 다시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돌아올 거야.'

      -Village life 중에서

  

  2020 노벨문학상 작품 읽기/루이즈 글릭의 「한여름」(발췌)_ 류경/ 시인 

  그녀는 오래 아팠다고 한다. 아픈 와중에 그녀는 놀라운 언어의 정원을 지었다. 그 정원을 돌아보던 독자들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정원에서 자신만의 약초를 찾아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아픈 아이들이 기른 독특한 푸른 장미는 세상에 특별한 향기를 선물하기도 하는 것이다. 흐린 날이 우리에게 많은 감성을 선물하는 것처럼.

  우리는 부서지는 별에 실려서 혼돈으로 가고 있다. 마실 물도 숨쉴 공기도 잃어버리고 무차별적인 광고의 홍수에 시달리면서 어머니 대지를 착취하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절망적인 시뮬라시옹의 우주가 우리의 유일한 현실이다. 나는 그녀의 시를 읽으며 그 우주로 다시 돌아갈 힘을 얻는다. 문명이라는 게 뭘까. 욕망이 그린 소음과 낙서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고대의 바이러스와 거대한 태풍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잠시 멈춰서 방향이 옳은지 길이 맞는지. 당신들은 누구인지 생각해보라고.

  그녀가 그녀의 시의 정원에서 우리에게 묻고 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어디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가장 돌아가고 싶은 생의 지점은 어디인가요. (p. 시 272-274/ 론 278-279)

 

  * 블로그주: 원문(영문)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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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문화 2021-봄(57)호 <아마존 베스트셀러 시집 읽기> 에서

  * 류경(류경희)/ 2004년 『시와경계』로 등단, 시집『내가 침묵이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