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포도주
프리드리히 횔덜린(Holderlin, Friedrich. 독일 1770-1843, 73세)
1
도시 주위는 쉬고 있다. 횃불로 장식한 환한 빛의
골목길은 고요해지고, 마차들은 소리 내며 사라진다.
하루의 기쁨에 포만한 사람들은 휴식하려고 귀가한다.
골몰하는 사람은 집에서 하루의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며
만족하고 있을 테지. 분주하던 시장에는 포도송이와 꽃들이
비워져 있고, 수공 제품들도 어느새 휴면하고 있다.
하나 멀리 정원에서 울려오는 현악의 음, 아마도 거기에는
한 쌍의 연인이 연주하거나, 혹은 어느 고독한 남자가
멀리 사는 친구 혹은 청춘 시절을 회상하리라. 향기 퍼지는
정원 근처의 분수, 항상 솟아오르며 신선한 소리를 낸다.
어스름한 공중으로 조용히 울려퍼지는 교회 종소리의 여운,
야경꾼은 몇 시인지 생각하며 큰 소리로 시각을 알린다.
바람 역시 이제 불어와, 작은 숲의 꼭대기를 흥분시킨다.
보라! 우리의 지상에 드리운 그림자의 상을, 달 또한
비밀리에 나타난다. 열광적인 여인, 밤이 별들을 가득
데리고, 아마 우리를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다가온다.
저기 놀라운 자, 사람들 사이 휩쓸린 낯선 여인은 슬프게
장려하게 산정 위를 향해 환한 빛을 비춰준다.
2
숭고하다 숭고한 밤의 호의는 놀랍기만 하다. 또한 아무도
밤에 어디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세상을, 인간의 갈구하는 영혼을 행동하게 해준다.
설령 현자라 해도 밤이 무얼 준비하는지 알지 못하리라.
왜냐면 그대를 사랑하는 최상의 신이 원하는 바이기에, 그래
그대에겐 밤보다 깨어 있는 낮이 더 낫게 생각될 테니.
허나 명료한 눈은 때로는 그림자를 사랑하는 법이야,
필요에서가 아니라, 그냥 즐기려고 잠을 청하기도 하니까.
혹은 충직한 사람도 즐거이 밤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그래, 밤에게 노래와 화환을 바치는 일은 어울릴 거야,
방황하는 자 그리고 죽은 자들에게 신성함이 주어져 있으나,
밤 자체는 가장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영원히 존속하니.
그러나 머뭇거리는 순간이나, 암흑 속에도 우리가 몇 가지
고수해야 할 무엇이 있듯이, 밤은 또한 우리에게
망각과 성스러운 명정酩酊을 허용해야 하리라,
또한 허락해야 하리라, 마치 잠들지 않으려는 연인들처럼
밤새도록 깨어 있을 때 끝없이 흐르는 말, 더욱더
가득 찬 술잔, 더욱 대담한 삶, 성스러운 기억 등을.
3
아울러 가슴속에 진심을 감추고, 거장이자 아이인
우리는 다만 용기를 헛되이 고수하곤 한다, 과연 누가
이를 가로막고, 우리에게 기쁨을 금하려고 하겠는가?
신들의 찬란한 불꽃은 밤이든 낮이든 간에 돌출하려고
추동한다. 그러니 오라! 우리, 개방된 것을 직시하며,
아주 멀리 있더라도, 어떤 고유한 것을 찾도록 하자.
분명한 것은 한 가지, 정오든 혹은 자정에까지
이르든 간에 하나의 척도는 항존한다는 사실, 만인에
공통적이지만, 각자에게 고유한 무엇으로 나뉘어 있고,
각자는 그걸 지향하고, 할 수 있는 한, 회귀하곤 한다.
그래! 만약 환호하는 광기가 일순 성스러운 밤에 가수들을
사로잡으면, 그것은 아마 즐거이 조롱을 조롱할지 몰라,
그렇기에 이스트모스로 오라! 열린 바다의 소리 나는 곳으로,
델피의 바위가 찬란히 빛을 반사하는 그곳, 파르나스로,
거기, 올림프스의 땅으로, 거기, 키테론의 산정 위를 향하여,
그 아래에는 가문비나무와 포도나무가 자라고, 그곳에서
이스메노스 강의 테베 요정이 카드모스 땅에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신은 바로 그리로 와서, 뒤를 가리키고 있다.
4
축복받은 그리스여! 그대, 모든 천국을 보듬는 집이여,
언젠가 우리가 젊었을 때 들었던 것은 모두 사실인가?
축제의 식장이여! 바닥은 바다, 식탁들은 산이어라.
오래전에 참으로 어떤 유일한 용도를 위해 축조되었구나!
그러나 왕관은 어디 있는가? 사원은? 넥타로 가득 채워진
그릇들은? 신들을 즐겁게 해주던 노래는 어디 있는가?
멀리까지 적중시키던 신탁은 어디서 빛을 발하고 있는가?
델피가 잠들어 있다면, 위대하고 재빠른 섭리는 어디서
울릴까? 어디서 현재의 모든 행복을 가득 채운 것이 쾌청한
공기 속에서 천둥치며, 우리의 시야 속으로 엄습하게 될까?
아버지 에테르여! 하는 외침은 수천 배로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어, 누구도 그 체험을 혼자서만 지니지 않으며,
선함을 즐거이 나누었고, 낯선 자들과 어떤 환희를
분배했으니, 말씀의 거대한 힘은 잠든 채 계속 자란다,
아버지여! 청명함이여!라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태고의
표시, 가급적 멀리, 정확하고 창조적으로 울려퍼진다.
왜냐면 천국의 신들은 그렇게 도래하고, 그날은 깊은
충격을 주며, 그림자로부터 인간에게 하강할 테니.
5
신들은 처음에는 무감각하게 찾아온다, 그들을 맞는 자는
아이들뿐, 행복은 너무 밝게, 눈부시게 다가오고,
인간은 이를 회피하니, 선물을 지닌 채 접근하는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반신이라도 감히 발설하지 않는다.
허나 그들의 용기는 거대하고, 반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그들의 기쁨, 하지만 그는 재물의 필요성을 알지 못하고,
개조하거나 거의 사용할 줄 모르며, 축복의 손으로 어리석게
선량하게 건드리는 세속적인 것들만을 성스럽게 여길 뿐.
천국의 신들은 가급적 그것을 참고 견딘다. 허나 그후 그들은
진실로 직접 오고, 사람들은 이날의 행복에 익숙하여,
이미 오래전에 하나이자 모든 것으로 명명되었던 그분들의
용모를,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바라보고, 말없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충만된 자유의 느낌으로 가득 채우며,
처음에는 혼자서 모든 욕망이 성취되는 걸 느끼리라.
인간은 그러하다. 재물이 거기 있고, 신은 선물로써 그를
직접 보살피지만, 인간은 이를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냥 지녀야 한다. 허나 이제는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명명하고, 이에 대한 언어가 마치 꽃처럼 형성되리라.
6
이제 인간은 진지하게 축복의 신들을 공경하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그들에 대한 찬양을 진정으로 공언하리라.
빛은 높은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
에테르에겐 느긋하게 찾는 태도가 용인되지 않으니,
그렇기에 품위로운 마음으로 천국을 생생하게 대하려고,
제반 민족들은 훌륭한 질서 속에서 몸을 일으켜서,
합심하여, 아름다운 사원 및 도시들을 굳건하고 고결하게
건설하며, 그것들은 해안 경계선 위로 솟아 오르리라
허나 어디 있는가? 잘 알려진 것, 축제의 왕관은 어디서
번창하는가? 테베와 아테네는 시들고, 올림피아에는
무기가, 전투놀이용 금빛 전차가 더 이상 소리나지 않으며,
코린트의 배들은 두 번 다시 꽃으로 장식되지 않는가?
어째서 고대의 성스러운 극장 역시 침묵하고 있는가?
어떠한 이유에서 신을 위한 춤조차도 즐겁지 않은가?
왜 신은 이전처럼 남자의 이마에 표시를 남기지 않고,
옛날처럼 당사자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아니, 그는 직접 찾아와, 인간의 형상을 받아들여,
우리를 달래며, 천국의 죽제를 완성시키고 끝내었다.
7
허나 친구야! 우린 너무 늦게 왔어. 신들은 살아 계시나,
우리의 머리 위 저 세상 높이 머물고 있을 뿐이야.
거기서 그들은 끝없이 영향 끼치고, 우리를 아낄수록
더욱더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개의치 않는 것 같아.
왜냐면 어떤 나약한 그릇은 그들을 항상 담지 못하고,
인간은 신의 충만함을 이따금 느낄 뿐이니까.
게다가 그들에 관한 꿈이 바로 삶이야. 허나 오류 역시
마치 선잠처럼 도움을 주고, 궁핍함은 밤을 강화시키지,
끝내 영웅들이 강철 같은 요람 속에서 충분히 성장하고,
이전처럼 천국과 유사한 힘을 가슴에 품을 때까지.
더욱이 그들은 천둥치며 온다. 그러는 동안 나는 가끔
친구 없이 혼자 있고, 더욱 잘 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말할지를,
궁핍한 시대에 시인들은 왜 존재하는가를 나는 모른다.
허나 그대는 말한다, 시인은 마치 성스러운 밤에 여러 나라를
배회하는, 포도주 신의 성스러운 사제들과 같다고.
8
우리에겐 오래전처럼 여겨지나, 사실은 얼마 전에
인간 삶에 축복을 내리던 그들 모두는 승천하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사람들로부터 얼굴을 돌리면서,
어쩔 수 없이 지구 위에서 슬퍼하기 시작했을 때,
최근에 어느 조용한 정령이 출현하여, 복된 삶으로 우리를
위로하며, 낮의 마지막 시간을 공언한 뒤 사라졌을 때,
천상의 합창은 언젠가 그가 계셨고, 다시 도래하리라는
뜻의 표시로서 우리에게 몇 가지 선물을 남겨주셨다,
우리가 이전처럼 신에 대해 인간적으로 기뻐할 수 있도록.
왜냐면 정신적 기쁨을 위해서 위대한 것은 사람들에게
너무 크나크고, 가장 큰 기쁨을 위해서는 강인함이 아직
결핍되어 있지만, 몇 가지 고마움이 조용히 생동한다.
빵은 지상의 결실이나, 빛에 의해 축복을 받아야 하고,
천둥을 내리는 신으로부터 포도주의 기쁨이 비롯하리라.
그렇기에 우리는 오래전 여기 계셨고 올바른 시각으로
재림하실 천국의 신들 또한 아울러 생각하게 되리라.
그래서 가수들도 진지하게 포도주 신을 노래하고,
옛날의 신에 대한 찬미는 울려퍼진다, 허영과는 달리.
9
그래! 바로 그가 낮과 밤을 화해시키고, 하늘의 천체를
영원히 운행시킨다고 그들은 정당히 노래하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마치 언제나 푸른 가문비나무의 잎,
항시 즐겁게, 스스로 선택한, 송악으로 만든 화환처럼.
왜냐면 포도주 신이 머물며, 떠나버린 신들의
흔적마저 사악한 자들의 암흑 아래로 보내버리기에.
옛날 사람들이 언젠가 신의 자식들에 관해 예언한 것을
보라! 바로 우리야, 우리가 헤스페리엔의 열매들이야!
놀랍고도 정확히 그것은 사람들 주위에 충만되고 있다.
시험한 자는 믿어라! 일이 수없이 발생하나, 아무것도
작용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심장이 없으니, 그림자야,
아버지 에테르가 모두를 알고 모든 것을 들을 때까지.
그러나 가장 위대한 신의 아들, 어느 시리아 사람은
횃불을 든 자로서 어느새 우리, 그림자들에게 내려온다.
축복받은 현인은 이를 본다, 갇혀 있는 영혼에서 어떤
미소가 빛나고, 빛에 의해 그들의 눈길이 녹아내린다.
거인은 부드럽게 꿈을 꾸고, 지상의 품속에 잠자며,
질투하는 케르베루스조차도 술 취해 잠들어 있다.
-전문-
* 블로그주: 위 시에 딸린 37개의 각주는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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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시인선 52 『빵과 포도주』 1997. 4. 30. <민음사> 펴냄/ 값 4,000원
* 박설호(옮긴이)/ 한신대 독문과 교수(1997년 당시), 저서『Probleme der Utopie bei Cbrista Walf』 『동독 문학 연구』, 역서『베를린의 유년 시절』(발터 벤야민), 『희망의 원리』(에른스트 블로흐),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성』(빌헬름 라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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