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규화목/ 고흰별

검지 정숙자 2024. 11. 8. 00:59

 

    규화목

 

     고흰별

 

 

  죽어서도 죽을 수 없는 나무가

  눈동자 속에서 직립으로 태어났다

 

  어쩌면 돌의 운명으로

  화석이 되기까지

  수 천만년 시간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숙성된 몸통으로 유물처럼 마주했다

 

  늪지대를 벗어나

  또 다른 나로

  꽃도 품을 수 없는 불멸의 나무가 되어

  토르소로 서 있다

 

  엽록체로 움직이던

  바람의 노래와 사랑의 빛살은

  나를 키운 생명의 기운이었다

 

  응고된 그리움이 빠져나간

  초록의 시간들을 되새김질했다

 

  지금, 수많은 발걸음이 지나가는 동안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창백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마주하고 있다

      -전문(p. 196-197)

 

  * 추천의 말/ 고흰별의 시는 어디에 살든 이방인이 되어버린 현대인의 삶을 담담한 어조로 말해주고 있다. 절절한 고독이 스스로 숙성되고 발효되는 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매우 개별적이면서도 정확하다. 수시로 밀려드는 세상의 낯선 풍경들은 시인을 매우 슬프게 하지만 결코 감정에 기울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건강한 시를 길어올리는 솜씨가 주목된다. (p. 25)/ -문효치(시인, 본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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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4-가을(95)호 <신인등단> 에서

  * 고흰별(본명:고인숙)/ 2007년 『문학시대』 신인상, 시예술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