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
정윤서
혼돈으로 가득했던 첫날을 지나
질서의 질서가 지배하는 곳에 날개 달린
두 줄의 시그니처는 탄생했다
공중을 운행하는 구름이 고층빌딩을 타는
외줄을 지난다
로프공의 얼굴을 비추는 빌딩은 로프공이
하강할수록 더욱 더 빛나는 청공淸空이 된다
날개를 장착한 G
두 줄의 결합된 빛으로 좌우를 넘나들며
도시를 벗어난다
정지된 속도가 순종의 끝자락에 얹혀 있다
날개 없는 외줄들이 걷잡을 수 없는 폭주로 흔들린다
전권을 제어하며 강변에 들어선 G
육체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를 통제하는
두 줄의 통치자
날개 없는 외줄들 천지에서 스스로를 질주하며 스스로를 멈춘다
짜릿함과 사틋함이 녹아 있는 좌석을 품고
산과 들의 이야기를 연주한다
물고리를 입에 문 새들의 날갯짓이 강물을
다독이며 윤슬을 일으킨다
무인순환도로에 들어선 G
준비된 배경음을 두 갈래로 정교하게 뿌린다
무인無人 운행 중인 차창 밖으로 기도는
던져지고 눈먼 물고기가 강 둔치로 튀어 오른다
자전과 공전의 어둠 속에서도 자율自律과
타율他律의 뒷모습은 수시로 변환된다
눈과 귀를 닫은 G
전지전능한 흑암의 정적을 안고 밤안개의 전면을 향해 비상한다
외줄 속에 흔들리던 그가 마침내 소거된다
-전문-
▶ 디스토피아의 시간, 그리움의 시간(발췌)_차성환/ 시인 · 문학평론가
「GENESIS」는 제목 그대로 새로운 문명의 창세기를 설파하고 있다. "혼돈으로 가득했던 첫날을 지나" 이 도시를 지배할 수 있는 신인류가 탄생한 것이다. 기존의 인류가 구시대의 "날개 없는 외줄들"에 매달린 "로프공"이었다면 최신 기술로 보강된 신인류 "G"는 "날개를 장착"하고 있으며 "육체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를 통제하는/ 두 줄의 통치자"이다. "도시"는 물론 "산과 들"을 지배하고 자신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환"시키는 신인류 "G"의 탄생은 마치 미디어에서 최첨단 테크놀로지 상품을 소개할 때와 유사한 세련된 이미지로 묘사된다. 심지어는 "준비된 배경음"과 함께 "물고기를 입에 문 새들의 날갯짓이 강물을/ 다독이며 윤슬을 일으킨다"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빠르고 강할 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인 "G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꾸며진 가상의 포장을 뚫고 한순간 "강 둔치로 튀어오른 " "눈먼 물고기"는 이 도시가 최첨단 아니라는 사실을 넘지시 암시해 준다. 문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인류 "G" 의 탄생을 통해 이제 전 시대의 유물이 된 "외줄 속에 흔들리던 그"는 멸종되고 "소거"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다. 과연 새로운 도시의 삶은 어떠한 모습일까. (p. 160-161/ 론 172_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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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가을(95)호 <신진조명/ 작품론> 에서
* 정윤서/ 경기 여주 출생, 2020년『미네르바> 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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