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즘 문화와 문학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조명제/ 문학평론가
마광수(서울. 1951-2017, 66세)는 유고 소설집이 되어 버린 『추억마저 지유랴』(어문학사, 2017)를 출판사에 넘기고, 죽음을 선택하기 직전에 본디의 제목을 바꾸어 '추억마저 지우랴'로 해 달라고 출판사에 연락한 것으로 전한다. 28편의 유고소설은 작품들이 대체로 짧은 편이지만, 자전自傳과 허구의 경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송희복, 「가버린 작가 남은 유고집」),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2019, 45쪽). 이 단편소설집 중의 「마광수 교수, 지옥으로 가다」는 마광수 자신의 가상적인 사후 세계를 다룬 작품이다. (p. 37)
에로티즘 문화와 문학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법관들이 에로티즘 문학과 문화사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에로티즘 문화와 예술이 근엄한 시대의 양반, 귀족에 의해 행해지고, 저술되고, 그려지고, 향수되었다는 사실(존재감이 없고 문맹이었던 서민층은 무얼 써서 남길 수도 없었다), 청소년용이 아니라 원본류 『춘향전』과 『변강쇠전』이나, 현대의 작가 최인욱의 『벌레 먹은 장미』 류만 제대로 읽어, 변화하는 사회현상과 그 흐름을 이해했더라도,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 소설 『즐거운 사라』와 저자 마광수를 몹쓸 음란물, 외설스러운 죄인으로 낙인찍어, 파멸로 몰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p. 48)
천재적인 시인으로, 광기 어린 소설가로. 야한 에세이스트로, 시론 및 문학이론가로 길지 않은 생애에 영욕의 세월을 보낸 마광수는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타살로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그의 시와 소설이 반드시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가 자신을 까발려 가며 위선으로 가득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강타한 것은 기억되어 마땅할 것이다. 그는 누구도 드러내지 못했던 성 담론의 제문제諸問題를 당당하게 정직성의 공간에 올려놓음으로써 한국적 에로티즘 문학에 불을 붙였다. 생존과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인 에로티즘 논의와 연구, 그리고 에로티즘 문학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과제는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
금기와 위반,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창조적 개성을 추구하며 고독한 삶을 살다 희생된 마광수 시인, 하늘나라에서 영광 누리시길 기원한다. ( p.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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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4-7월(665)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 조명제 문학평론가> 에서
* 조명제/ 경북 청송 안덕 핏골 직동稷洞출생, 1984~85년『시문학』 시 부문 천료, 1985년『예술계』 문학비평 부문 등단, 시집『고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노래』, 문학비평집『한국 현대시의 정신논리』『윤동주의 마음을 읽다』, 동인시집(공저)『남북시』 5권, 『한국시의 흐름과 역사』, 『글짓기 교실』, 편저『대학국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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