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맡음으로써
나호열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6년 동안) 때 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 정책 가담자로 이스라엘에서 교수형 되었다. 1942년 나치 고위관리로서 아이히만(1906-1962, 56세)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그들을 집단 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쟁 뒤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1946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1958년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나치 전범 추적자 지몬 비젠탈과 아스라엘 '자원봉사' 단체에 의해 정체가 드러나 1960년 5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9일 뒤 비밀리에 이스라엘로 이송되었다. 이러한 조치가 아르헨티나 법을 위반했다는 여론이 진정된 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특별 3심 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다. 1961년 4월 11일에서 12월 15일까지 계속된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_다음백과에서 인용/ (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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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간 『미당문학』 2024-하반기(18)호 <특집 2/ 한국 현대시를 읽는 길> 에서
* 나호열/ 충남 서천 출생, 1986년『월간문학』 신인상 &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담쟁이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외 20권, 시선집『울타리가 없는 집』외 3권, 전자시집『예뻐서 슬픈』외 3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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