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야 까마귀야
정우영
밤새 큰 눈이 내렸다. 집과 길, 여기와 저기의 분별을 지웠다. 풍경들은 다만 새하얗고 펑퍼짐한 경계선을 그릴 뿐, 그 무엇도 딴소리를 내지 않는다.
말라비틀어진 장미도 얽혀 있는 전깃줄도 추위에 떨던 허기도 다 단란하게 가라앉아 고요라는 한 음절로 차분하다. 날카로운 작설雀舌조차 착실하게 평화롭고,
그러니 까마귀야, 철없는 바람아.
네 눈과 귀가 함께
보고 들은 풍문*은 정녕코 묻어놓아라.
천연天緣을 앓다 어느 날 갑자기 우두둑,
지구가 통째로 뒤집힌다고 해도.
-전문-
* 최근 3년 동안의 풍문 아닌 풍문을 살짝 털어놓을까. 2021년에는 중동 지역의 사막에 폭설이 쏟아졌고 독일 라인강은 백년 만에 대홍수를 일으켰으며, 2022년에는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에 극심이 가뭄이 들어 살아 있는 것들 목숨이 위태로웠다. 2023년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 대지진으로 2023년 현재 오만 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안(발췌) _신상조/ 문학평론가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의 불안에 '기생"한다거나, "불안을 없애려는 시도가 오히려 불안을 낳는다는 역설"에 대한 입증, 혹은 "주체를 외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신호"가 바로 불안이라는 논의는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실패한다. "물에 잠긴 사막 도시 두바이···" 2년 치 비 하루 만에 쏟아져···", "타이완 강진 때 '기우뚱' 여진에 '콰당'··· 원자탄 42개···," 최근, 하루 사이에 연해서 접한 폭우와 강진으로 인한 재해 소식이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온갖 종류의 파국 중 하나가, 점점 대중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새로운 권력의 상징인 미디어로부터 날마다 송신되고 있다. 다음(블로그 註:위 시의 각주)은 2003년 4월 6일의 ⟪뉴욕타임스⟫ 기사다. "9월 11일에 제일 먼저 죽음이 찾아왔고 현재는 전쟁과 질병이다. 다음은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정우영의 시가 이에 대한 답을 풍문처럼 소개한다. (p. 시 149-150/ 론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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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 <비평가의 시선> 에서
* 정우영/ 1989년 『민중시』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 신상조/ 문학평론가, 201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등단, 저서『붉은 화행』 『시 읽는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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