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
문태준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 웅큼, 한 웅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과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전문(p. 172)
♣ 문태준의 시 「먼 곳」은 마지막 이별에 대한 애달픈 헤아림이다. 모든 사람들이 갔으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그곳.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부존재의 존재인 저 세상을 시인은 '먼 곳'이라 불렀다. 그의 구도자적 글쓰기는 종종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내 눈을 흔들리게 한다. (강문출/ 시인)
-----------------
* 『상징학연구소』 2024-가을(15)호 <다시 읽고 싶은 시>에서
*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 발달』『먼곳』『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아침은 생각한다』 등
* 강문출/ 부산 기장 출생, 2011년『시사사』로 등단, 시집『타래가 놀고 있다』『낮은 무게중심의 말』외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뻐꾸기 소리/ 서지월 (0) | 2024.08.30 |
---|---|
의자의 완성/ 권이화 (0) | 2024.08.30 |
음악 분수대/ 이영옥 (0) | 2024.08.29 |
허공 길/ 강서완 (0) | 2024.08.29 |
변의수_···주제적 접근의 실험작업과 유의미성(발췌)/ 피어나는 연꽃 : 강병철 (1) | 2024.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