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한 시대의 천재 문장가 이규보와의 가상 인터뷰(발췌)/ 김혜천

검지 정숙자 2024. 7. 27. 14:47

 

   

    한 시대의 천재 문장가 이규보와의 가상 인터뷰(발췌) 

 

     - interviewee: 이규보(고려 1168-1241, 73세)

     - interviewer: 김혜천(시인, 다도인문강사)

 

 

  한 시대를 천재 문장가로 풍미하다 강화 길상면 징강산에 누워계신 당당하고 호방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시 쓰며 술 마시며 고려를 살다간 천재 시인 이규보 선생을 찾아뵈었다.

  수많은 저서 중에서도  『동국이상국집』 53권은 8백 년 뒤에까지 남겨져 고려의 역사, 문화뿐 아니라 깊고 넓은 시관과 사상 그리고 고려시대의 다양한 생활상과 부조리한 사회 현상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아내와 자식 생각에 노심초사하고 권력 앞에서 허리도 굽신거릴 줄 아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러면서도 평범한 이웃 아저씨 같은 선생의 인간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김혜천: 선생께서는 차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셨던 것으로 압니다.

 

  ■ 이규보: 가끔 절에 들어가면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져 스님들이 일부러 술상을 차려 내오시기도 하는데 , 내 어찌 스님의 술상을 받겠는가, 하여 시를 지어 사양했었다네. 내가 술을 좋아하나 취생몽사형 술꾼은 아니란 걸 변명하고 싶었던 게지. 그 시를 어디 한 번 보여드림세.

 

  내가 지금 산방을 찾아온 것은

  술 마시려 해서가 아닌데

  올 때마다 술자리 베푸시니

  얼굴이 두꺼운들 어찌 땀 안 나리

  스님의 격조가 높으신 것은

  오직 향기로운 차를 마시기 때문이니

  몽정夢頂의 새싹을 따서

  혜산惠山의 물로 달인 게 좋다지

  한 사발씩 마시고

  한 마디씩 나누어

  점점 심오한 경지에 들어간다네

  이 즐거움 참으로 맑고 담담하니

  어찌 반드시 술에 취할 것 있으리

    ※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 고율시,「엄 선사를 찾아서」 전문

 

  '몽정'은 중국 사천성四川省의 명산인 몽산夢山의 정상으로 거기서 재배되는 차를 으뜸으로 치곤 했거든. 그리고 혜산천惠山泉은 강소성江蘇省 무석현無錫縣 서쪽에 있는데, 다경茶經을 지은 육우陸羽가 그 물맛을 높이 평가했었지. 차는 잠을 쫓는 기능도 있었으므로 나도 차를 자주 마셨다네.

 

  □ 김혜천: 시 쓰고 차 문화를 가르치며 살아가는 저로서는 다인茶人으로서도 대 스승을 뵙게 되어 여간 영광이 아닙니다. 글 쓰는 사람들은 사회 현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떤 역할을 해야 되겠는지요?

 

  ■ 이규보: 나는 늘 가난한 선비였으나 백성의 어려움을 안타까워하고 지방관이나 향리의 수탈을 보면서도 벌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비탄했네. "저 두더지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비분강개하기도 했고. 또한 뇌물이 통하는 사회를 부끄럽게 여겨 그를 문장으로 남기곤 했는데, 글 쓰는 사람들은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해요.

 

  흉년이 되어 백성은 다 죽게 되어

  오직 남은 것은 뼈와 가죽뿐인데

   (···)

  묻노니 너는 입을 얼마나 가졌길래

  백성들의 고기를 탐내서 씹어 먹는가 

   ※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0, 고율시,「군수 몇 사람이 뇌물을 받아」 부분

 

  조그만 배가 가고 오는데도 뇌물이 있고 없음에 따라 느리고 빠름 앞서고 뒤처짐이 있거늘 하물며 벼슬을 다투는 마당에 있어서랴 

  ※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설,「배와 뇌물 이야기」 부분

 

  □ 김혜천: 마지막으로 후학들이 간직해야 할, 한 말씀 남겨주십시오.

 

   ■ 이규보:

   뜻이 진정 천지사방 밖에 있어

   하늘과 땅도 얽매지 못하리라

   장차 우주의 근원과 더불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 노니려는가

   ※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0, 傳,「백운거사 전기에 실린 이규보의 자찬」 전문

 

 모름지기 문학하는 사람은 무한한 시선으로 사물을 깊이 살펴 근원을 사유하고 뜻을 높고 무량한 곳에 두어야 하며, 또한 치열하게 쓰면서도 쓴다는 생각조차 없는, 즉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위無爲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보네. 그리 당부하겠네. 

 

  □ 김혜천: 오늘 선생의 넓고도 깊은 철학이 담긴 말씀 감사히 여밉니다. 기회 주어지는 대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p. 지문 40/ 대담 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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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 강민경 지음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푸른역사, 2012)

   - 석용운 엮음『한국 茶文化 자료집 1』(초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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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24-여름(49)호 <특집 1/ 지헌止軒 이규보 선생과의 가상인터뷰>에서 

* 김혜천/ 2015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