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시인과의 대화(추려 뽑은, 일 문답) / 엄창섭 : 오탁번

검지 정숙자 2024. 3. 14. 17:01

 

   

 시인과의 대화(추려 뽑은, 일 문답)

 

 

      - interviewer : 엄창섭

      - interviewee : 오탁번

 

 

  엄창섭:  재학생들에게 '중간, 기말고사' 때에,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신 까닭에 "시험 준비는 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 하신 언어의 뉘앙스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p. 384) 

 

 

  오탁번: 나는 영문과를 나와서 대학원은 국문과를 다녔는데, 당시의 대부분의 문학 강의가 문학하고는 거리가 먼 무슨 서지학 같은 것이었지요. 자유로운 문학적 영혼을 지닌 학생들이 딱 질식할 정도로 황폐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을 때 강의실을 아주 자유로운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창작론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에게 담배도 마음 놓고 피우라고 했어요. 시험을 치를 때 "중앙도서관 앞에 은행나무는 몇 그루가 있는가?" 라는 문제를 내기도 했지요. 메타포나 이미지에 대한 이론적인 문제는 곧잘 답을 하는 학생들이 이런 문제에는 영 갈팡질팡이에요. 그러면 내가 한마디 하는 겁니다. 문학이 우주와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문학적 자아로 변용시키는 것인데, 너희들은 눈을 감고 다니느냐. 은행나무 밑에서 고향을 생각하든가 애인을 생각하든가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놈들이 무슨 문학을 한다고 껍적대느냐고요. 나는 29세 때부터 육군사관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 고려대에서 35년 동안 교수를 했어요. 고려대에서 만 30년 동안 봉직했어요. 휴강도 많이 하고 종간은 "전국에서 1등으로 하는 "불량 교수였는데도 학생들은 내가 명강의를 한 교수인 줄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에요. 아마도 학생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일깨워준 것을 아주 대단한 미덕으로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주연 배우가 나를 닮았다는 얘기를 학생들에게 들은 적도 있어요. 하긴 강의실에서 교재를 찢어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게도 했거든요. 방학 숙제로 잠자리와 매미를 잡아 오라고 한 적도 있으니까요. 초등학교가 아니라, 대학교에서! 그것도 고려대학교에서 그런 짓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나는 교수이긴 해도 해골바가지 같은 체제의 권위나 관습에 저항하고 싶은 반골 기질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도 그때의 제자들을 만나면 옛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술을 마십니다. (p. 384-385)  

 

   (···)

 

  엄창섭: 교수님의 많은 시편 중에서 가장 대표시랄까? 백미에 해당하는 시 제목을 지적해주시고, 시적 동기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 386)  

 

  오탁번: 1997년 '정지용문학상'을 받은 시 「白頭山 天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선 시를 인용합니다. (p. )  

    

  1.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가까워 장백소나무 종비나무 자작나무 우거진 원시림 헤치고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순례의 한나절에 내 발길 내딛을 자리는 아예 없다 사스레나무도 바람에 넘어져 흰 살결이 시리고 자잘한 산꽃들이 하늘 가까이 기어가다 가까스로 뿌리 내린다 속손톱 만한 하양 물매화 나비날개인 듯 바람결에 날아가는 노랑 애기금매화 새색시의 연지빛 곤지처럼 수줍게 피어 있는 두메자운이 나의 눈망울 따라 야린 볼 붉히며 눈썹 날린다 무리를 지어 하늘 위로 고사리 손길 흔드는 산미나리아재비 구름국화 산매발톱도 이제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백두산 산마루를 나 홀로 이마에 받들면서 드센 바람 속으로 죄지은 듯 숨죽이며 발걸음 옮긴다

 

  2.

  솟구쳐 오른 백두산 멧부리들이 온뉘 동안 감싸안은 천지가 눈앞에 나타나는 눈깜박할 사이 그 자리에서 나는 그냥 숨이 막힌다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백두산 그리메가 하늘보다 더 푸른 천지에 넉넉한 깃을 드리우고 메꿎은 우레소리 지나간 여름 한나절 아득한 옛 하늘이 내려와 머문 천지 앞에서 내 작은 몸뚱이는 한꺼번에 자취도 없다 내 어린 볼기에 푸른 손자국 남겨 첫 울음 울게 한 어머니의 어머니 쑥냄새 마늘냄새 삼베적삼 서늘한 손길로 손님이 든 내 뜨거운 이마 짚어주던 할머니의 할머니가 백두산 천지 앞에 무릎 꿇은 나를 하늘눈 뜨고 바라본다 백두산 멧부리가 누리의 첫 새벽 할아버지의 흰 나룻처럼 어렵고 두렵다

 

  3.

  하늘과 땅 사이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천지가 그대로 하늘이 되고 구름결이 되어 백두산 산허리마다 까마득하게 푸른하늘 구름바다 거느린다 화산암 돌가루가 하늘 아래로 자꾸만 부스러져내리는 백두산 천지의 낭떠러지 위에서 나도 자잘한 꽃잎이 되어 아스라한 하늘 속으로 흩어져 날아간다 아기집에서 갓 태어난 아기처럼 혼자 울지도 젖을 빨지도 못한다 온 가람 즈믄 뫼 비롯하는 백두산 그 하늘에 올라 마침내 바로 서지도 못하고 젖배 곯아 젖니도 제때 나지 못할 내 운명이 새삼 두려워 백두산 흰 멧부리 우러르며 얼음빛 푸른 천지 앞에 숨결도 잊은 채 무릎 꿇는다

    -전문(p. 387-388)

 

「백두산 천지」는 1994년 『동서문학』 겨울호에 처음 발표된 작품입니다. 그해 여름 제4시집 『겨울강』을 내고 중국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어요. 한국시인협회에서 중국 조선족 시인들과 어울려 한민족 문학의 뿌리와 전망에 관한 세미나를 연길에서 열게 되었어요. 그때 나도 발제를 하게 되었는데 워낙 오래전이라 이젠 제목도 내용도 생각나지 않네요. 세미나가 끝나고 우리는 대망의 백두산 순례길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탄, 유안진, 신달자, 이가림, 오세영, 신협, 임영조, 안정옥 시인 등 30여 명쯤 되었지요. 나는 그때까지도 시인보다는 오히려 소설가 쪽에 더 가까운 문인이었습니다. (p. 388)

   (···)

      백두산 천지를 다녀와서 나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시 한 편을 쓴 일이 있는데, 부끄러워서 차마 입을 열 수는 없으나, 그 시를 쓸 때 내 마음 속에는 먼 후일을 기약하는 간절한 희구가 있었다. 국어사전과 고어사전을 수십 번 들춰보고 백두산에 자생하는 식물의 도감을 찾아서 야생화 이름과 나무 이름을 샅샅이 조사하고 새벽에 홀로 깨어 스스로 암송하며 운율을 다듬으면서, 신이 지핀 듯 지우고 쓰고 또 지우고 한숨 쉬면서 쓴 작품이다.

  먼 후일을 기약하는 간절한 희구? 지금 털어놓자면, 이다음 통일이 되고 나서 국어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이 있을 때 기필코 나의 「백두산 천지」가 그 첫 페이지를 장식하리라는 확신에 기인한 희구였습니다. 북의 시인 조기천의 「백두산」이 아니라 남의 시인들이 중구난방으로 쓴 '백두산' 시편들과는 비교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백두산 천지」라고 나는 확신하곤 했습니다. 좀 웃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그런 희구의 한 가닥 징후로서 이 시가 뒤늦게 1997년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백두산 천지」는 시인으로서의 나의 생애에도 무시무시한 전환점을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운 숨결이 배어 있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라는 나만의 선언을 실천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었습니다. 시집 『겨울강』 이후에 낸 시집 『1미터의 사랑』, 『벙어리장갑』, 『손님』, 『우리 동네』는 우리말의 숨과 결이 녹아 있는 '밤을 지새운' 나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백두산 천지」를 읽어보면서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절대자가 부르는 대로 받아쓴 작품 같습니다. 내 시세계의 전체 무게는 사실상 이 한 편으로 족하다는 평화로운 마음이 생길 때마다 나는 조용히 혼자 웃습니다. (p. 389-390)

     『아시아문예』 2013_봄(28)/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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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탁번 시 읽기 2 『좋은 시는 다 우스개다』 4부 <시인과의 대화> 에서/ 2024. 1. 25. <태학사> 펴냄 

 * 엄창섭/ 1977년『시문학』으로 등단, 가톨릭관동대학교 명예교수, 현)김동명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