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네 시를 읽으면 투명한 느낌이 나"(두 마디)/ 이우성 : 고명재

검지 정숙자 2024. 4. 2. 02:45

 

   "네 시를 읽으면 투명한 느낌이 나"(두 마디) 

   

   - interviewer: 고명재(시인)

   - interviewee: 이우성(시인)

 

 

  고명재: 이번 시집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2022. 문학과지성사)은 참 투명함이 돋보였어요. 꾸미거나 드러내거나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골똘히 바라보면서 충실하게 담아내려는 어떤 태도 같은 게 느껴졌어요. 치장하거나 둘러 말하지 않는 이 태도나 힘은 어디서 온 건가요. (p. 169)

 

  □ 이우성: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뵈러 간 날이 있어요. 치매를 되게 오래 앓으셨어요. 기억하시는 건 매일 다니는 집 앞의 산책로 하나 정도. 그런데 그날은 저를 보고, 어, 왔니, 하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어요. 신기한 날이었어요. 할머니 손을 잡고 걷는데 꽃이 피어 있었어요. 그걸 보시더니 할머니가 갑자기 "꽃은 해마다 피지만 사람은 아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데 이건 내가 시에 담을 수 없겠구나 싶었어요. 동시에 내가 원한 시가 바로 그런 말이란 걸 알았어요. 할머니에게 제가 참 잘했거든요. 그 '말'을 선물로 그렇게 받은 거예요. (p. )

 

  ■ 고명재: 이번 시집에도 '우성'이라는 이름은 호명이 되고 있어요. 혹은 그 '우성'이 직접 말을 하기도 하구요.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이 사람이 말을 하면 할수록 이 사람이 희미해지고, 공기적인 존재가 되는 것 같았어요. "날아라 우성아// 내 이름은 어떻게 지우지"(「슬픔은 까맣고 까마득하고」). 이런 태도나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p. 169-170)

 

  □ 이우성: 저는 2000년대 이후의 미래파 시들이 보여준 '자아의 분열 상태'를 많이 접하기도 했고, 실제로 당시에는 그런 주체들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다른 분들의 시를 흉내 내며 쓴 것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시를 통해 '나'랑 정말 많이 싸우고 대면하려 했는데 참 신기하게도 정작 내 시속에 '나다운 나'가 없구나 싶기도 했고요. 그게 첫 시집 마지막 퇴고할 때 느꼈던 점이에요. 그 후로 '분열적인 나' 말고 '나다운 나'랑 대면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정면으로 자신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저는 자신을 좀 흘겨보거나 옆에서 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신을 지우는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시 안에 다양한 "우성이"들이 나오는 거고요. 그렇게 시 속에 나오는 "우성"이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그걸 읽는 사람들의 태도나 마음이 투영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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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8월(404)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대담> 에서

 이우성/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 고명재/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