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에게서 온 편지
이교헌
어느 날에 이곳에 왔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지 몰랐습니다
밑동이 점점 굵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뿌리는 땅 위에서 서로 얽혀 기어 다니듯 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이겨냈습니다
때로는 뜨거운 태양이 성가신 적도 있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에는 추위를 이겨내느라 고생이
심했습니다
가끔 병약한 이웃들이 사라지는 걸 보았습니다
노을이 걸린 어느 날 저녁은 근사했습니다
더욱 당신이 보고 싶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주 좋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피해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오롯이 서 있었습니다
당신을 부르며 서 있었습니다
바람으로 흩어지기 전까지
-전문(p.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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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4-여름(96)호 <신작시> 에서
* 이교헌/ 2023년 격월간『문학광장』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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