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안시성(安市城)*/ 박재화

검지 정숙자 2024. 7. 9. 01:55

 

    안시성安市城

 

     박재화

 

 

  중원을 차지하고 티벳 돌궐 등을 제압하여 기세를 떨치던 당 태종 이세민, 그러나 643년 황제의 위신이 떨어져 태자도 마음대로 못 세우고 신하들 앞에서 자살소동도 벌이다가 권위 회복차 644년 2월 고구려**에 선전포고를 하였으니

 

  유목민 기마병을 앞세운 그의 50여만 대군은 개전 초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 등을 점령하며 기고만장, 드디어 645년 6월 20일엔 안시성 가까이 이르렀으니

 

  이때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수도를 지키면서 대대로大對盧 고정의高正義로 하여금 군사 15만을 이끌고 이세민과 맞서도록 하였으니

 

  고정의는 북부욕살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에게 군사 4만을 주어 수비위주로 싸우면서 적을 피곤케 하고 보급망을 끊어라 당부했건만 젊은 고연수는 당의 유인책에 넘어가 정공법으로 싸우다 6월 23일 주필산전투에서 그만 패하고 항복했으니***

 

  신중한 고정의가 10만여 군사를 독려하며 게릴라전법으로 당군을 공략하니, 이세민은 7월 15일엔 안시성 동쪽으로 8월 10일엔 안시성 남쪽으로 부대를 옮기는 등 쫓길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7월 13일에는 특별히 아끼는 부하들의 시체를 수습하지도 못한 채 도망치기 바빴으니

 

  이처럼 두 달이나 허비한 뒤 안시성을 포위한 이세민이 토산土山을 쌓으면서까지 함락시키려다 실패하자 애꿎은 말단 장수 부복애傅伏愛를 참수하는 등 몸부림쳤으나 자신도 눈에 화살을 맞아 645년 9월 18일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으니

 

  도망가면서도 고정의의 추격이 두려워 심복이자 종친인 이도종李道宗에게 4만 대군을 맡겨 후방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 모든 것이 핵심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전통이었던 고구려의 1차 고당전쟁 당시 전방 총사령관 고정의****의 대활약 덕이었으니

 

  668년 9월 26일 통탄스럽게도 평양성이 무너진 뒤 안시성은 기어이, 오랫동안 고구려 부흥운동의 중심지였으니!

    -전문(p. 74-75)

 

* 안촌홀安寸忽이라고도 함. 오늘날 중국 요녕성 해성시海城市 영성자둔英城子屯으로 비정됨

** 광개토대왕 때부터 스스로 국호를 고려高麗라 함

*** 그는 당으로부터 홍로경鴻矑卿에 봉해지고 나중 고구려 공격의 앞잡이가 되었으나 645년 자신의 행동과 처지를 비관하다 죽음

**** 당시 안시성주가 양만춘楊萬春이라고 잘못 알려진 것은 16세기 명의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어디까지나 승리의 주역은 고정의라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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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시학』 2024  여름(70)호 <이 계절의 시인_박재화/ 자선시> 에서

 *  박재화/ 1951년 충북 출생, 1984년 『현대문학』에 「도시의 말」연작으로 2회 추천완료 등단, 시집『도시의 말』『우리 깊은 세상』『전갈의 노래』『먼지가 아름답다』『비밀번호를 잊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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