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누군가 툭, 운다/ 박희연

검지 정숙자 2024. 7. 8. 01:47

 

    누군가 툭, 운다

 

    박희연

 

 

  우리는 봄마다 목련을 센다.

  우리는 우리였지만

  저마다 혼자 그 꽃을 센다.

  수를 세는 일은 늘 지루해

  숫자가 지루할 때쯤

  지루한 목련이 떨어진다.

  목련이 지나간 골목 철쭉이 피고

  철쭉이 지나간 골목 장미가 피고

  장미가 지루할 무렵 장마가 온다.

  그 골목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애인은

  두 번째 괄호를 열고 시름에 잠긴다.

 

  세상에 해명해야 할 일들은

  애써 찾지 않아도 꽃처럼 피고 지는데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괄호를 친다.

  다시 우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저마다 혼자 누워 그 소리에 젖는다.

  숨죽이고 기다리던 누군가

  툭, 운다.

  한 걸음 경계 너머 저 바다

  한 생 버려져 녹이 슨 저 괄호

 

  장마가 지나간 골목 풀벌레들 울고

  풀벌레 죽어간 골목

  사람들은 여전히 숨죽이고 운다.

  돌아오지 않는 강 앞을 서성이듯

  애인은 아직 괄호를 닫지 못한다.

     -전문(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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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4-여름(102)호 <젊은 시인 7인선> 에서

 * 박희연/ 2021년 『상상인』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