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폴란드 한국문학의 대모, 할리나 오가렉 교수/ 이혜선

검지 정숙자 2024. 6. 19. 02:47

    <한 줄 노트> 

 

     폴란드 한국문학의 대모, 할리나 오가렉 교수

 

       이혜선

 

 

  * 나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생명의 전화' 자원 상담원으로 상담활동을 한 적이 있다.

  생명의 전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전화상담으로는 처음으로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던 때였다. 나는 2기 상담원으로 여러 분야의 교육을 받고 상담원 자격을 얻어, 주로 저녁 8시간대 철야상담을 맡아서 상담하면서 소그룹 모임으로 열심히 공부도 하였다. (p. 146)

 

  * '' '한국어와 결혼한 여인'으로 불린 할리나 오가렉 교수는 그 후에 8년간의 작업 끝에 한국문학사를 탈고해 제1권 『한국고전문학』을 출간하고 2004년 작고했다. 제자 야니샤크 교수에 의해 1년 후 유고집으로 작업의 완결판인 『한국현대문학』이 출간되었다. 202쪽 분량의 이 책은 삼국시대 향가부터 한시. 한문소설. 고려가요부터 조선 전기의 시조. 가사를 거쳐 조선 후기 산문. 한글 소설까지 한국 고전 문학사 전체를 아우른다.

  오가렉 최 교수는 폴란드에 유학 왔던 북한 학생과 결혼해 1957년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1962년 북한이 외국인 추방령을 내림에 따라 북한인 남편과 생이별한 후 바르샤바로 돌아갔다. 그는 평생 재혼하지 않은 채 딸과 함께 살면서, 바르샤바 대학 동양학부 교수로 한국 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한국의 신화 설화 전설 종교 연극 문학 등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1989년 한국이 폴란드와 수교한 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연세대 러시아문학과의 최건영 교수와 함께 폴란드인들을 위한 『한국어 1,2』 교과서까지 썼다. 「춘향전」부터 한말숙의 「아름다운 영가」, 최인호의 「가면무도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 작품을 폴란드어로 번역했다. (p. 162-163)

 

  * 마치도 새끼를 꼴 때 한 가닥이 아래로 가면 다른 한 가닥은 위로 가고, 위에 있던 가닥이 아래로 가면 아래 있던 가닥은 또다시 위로 가고 하여 두 가닥이 서로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보다 완전하고 튼튼한 한 오리의 개끼줄을 이루듯이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은 이치에서 오랜 세월 물 흐르듯 순리에 의해 흘러왔을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게 잘 늙은 노부부는 서로가 비슷하게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p. 191)

 

  * 희부연 새벽빛에 살펴보니 제비의 어미 아비는 날 새자 재빨리 행동 개시로 새끼들 입에 먹이 넣어 주느라 바쁘다. 어머니 말씀이 새끼는 둥지에서 자고 어미 아비는 마당의 빨랫줄 같은 데서 밤을 지낸다고 한다. 벌써 한 배(네 마리)를 키워서 내보내고 그 동안 동생을 또 네 마리 깠다고 하는데 제비새끼는 한 번 날기를 배워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신다. (p. 201)

 

  * 화엄경에는 보살이 사는 제석천에 '인드라'라는 구슬그물 이야기가 있다. 구슬 하나하나를 가로 세로 꿰어서 그물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빛이 비치면 구슬들은 서로서로 다른 구슬에 빛을 반사하여 모든 구슬이 찬란히 빛나는 화엄세계가 된다. 모든 구슬에서 나오는 빛이 모든 구슬로 반사되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안에 들어가고 상입相入, 서로가 서로의 중심에 놓이게 되고 상중相中, 그래서 구슬은 하나로 있을 때보다 훨씬 찬란한 무지갯빛이 되고 구슬은 한 덩어리가 되어 황홀하게 빛나는 것이다. (p. 246)

 

  * 가끔씩은 죽어버리고 싶은 몹시 아름다운 가을날을 견뎌내며

  결국 나는 살게 되리라.

  나를 태어나게 하고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죽어가게 하는 불가시적不可視的인 본질과 신비를 탐색하기 위해 가끔은 달빛 아래 홀로 지새우는 밤을 가지면서 내면의, 혼자만의 고독의 방에 은밀히 들어앉아 얼어붙은 감성의 심장에 불을 붙일 것이다.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고자 했던 약속을,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증류수 같은 순수만이 아름다움이고 진리인 줄 알았던, 나 자신 순수덩어리였던 시절을, 아주 잊지는 말고 가끔씩 꺼내어 기억하면서. (p. 260-261)

 

  --------------------

* 이혜선 수필집 『아버지의 교육법』 에서/ 2022. 5. 25. <시문학사> 펴냄

이혜선/ 경남 함안 출생, 1981년 월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흘린 술이 반이다』『운문호일雲門好日『새소리 택배』 『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새소리 택배』『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神 한 마리영역시집『New Sprouts You』(공저)저서『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이혜선의 명시산책』, <진단시> <남북시> <유유> <향가시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