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늦더위/ 신덕룡

검지 정숙자 2024. 3. 24. 02:24

 

    늦더위

 

     신덕룡

 

 

  그는

  포크레인 기사의 보조였다

 

  긴 장마로 파여나간 방죽에 포크레인이 큰 돌을 쌓은 뒤 벌어진 틈에 작은 돌들을 끼워 넣고 그 위에 철망을 씌우는 일이 그의 몫이다 이 나이까지

 

  십장 한번 해 본 적 없다고 했다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한 게 아니냐고, 뭔가에 부딪치고 깨지고 사달이 나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고 애시당초 이렇게 생겨 먹은 거라고 그가 말할 때

 

  잇새로 쉭쉭,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막걸리 서너 잔에 취했냐고 지금까지 불러주는 데 있는 게 어디냐고 두 남매, 그 힘들다는 시집 장가 보낸 게 자랑스럽지 않느냐는 말이 입속에서 달싹거렸다

 

  하늘 향해 주먹 쥐고 부르르 떤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후회했다고

 

  깔고 앉은 돌이 불판처럼 뜨거워 엉덩이를 옮겨 앉던 그가 정리할 게 남았다며 지는 해를 등에 업고 일어설  때

 

  비틀거리는 몸

  앞장선 그림자가 가만히 버텨주고 있다

      -전문(p.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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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신덕룡/ 1985『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 2002년『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소리의 감옥』『하멜서신』『단월』등, 저서『환경위기와 생태학적 상상력』『풍경과 시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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