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
신덕룡
그는
포크레인 기사의 보조였다
긴 장마로 파여나간 방죽에 포크레인이 큰 돌을 쌓은 뒤 벌어진 틈에 작은 돌들을 끼워 넣고 그 위에 철망을 씌우는 일이 그의 몫이다 이 나이까지
십장 한번 해 본 적 없다고 했다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한 게 아니냐고, 뭔가에 부딪치고 깨지고 사달이 나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고 애시당초 이렇게 생겨 먹은 거라고 그가 말할 때
잇새로 쉭쉭,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막걸리 서너 잔에 취했냐고 지금까지 불러주는 데 있는 게 어디냐고 두 남매, 그 힘들다는 시집 장가 보낸 게 자랑스럽지 않느냐는 말이 입속에서 달싹거렸다
하늘 향해 주먹 쥐고 부르르 떤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후회했다고
깔고 앉은 돌이 불판처럼 뜨거워 엉덩이를 옮겨 앉던 그가 정리할 게 남았다며 지는 해를 등에 업고 일어설 때
비틀거리는 몸
앞장선 그림자가 가만히 버텨주고 있다
-전문(p.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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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신덕룡/ 1985년『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 2002년『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소리의 감옥』『하멜서신』『단월』등, 저서『환경위기와 생태학적 상상력』『풍경과 시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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