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끝/ 김조민

검지 정숙자 2024. 3. 23. 02:12

 

   

 

    김조민

 

 

  그는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갔다

  좁은 골목을 지나 야트막한 오르막을 천천히 걸었다

  따르던 어둠이 점점 멀어졌다

 

  붉은 대문 집 마당을 지나갈 때 강아지가 낑낑 대며 자신의 목줄을 잡아당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슬픔과 희망이 막연하게 뒤엉킨 공기를 들이마시며

  오로지 하나의 끝을 바라보았다

  오르막은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처음을 둔 채

  계속되었다

 

  하수구에서 태어난 날벌레처럼

  무한히 자라나 온통을 뒤덮는 한숨처럼

  어제의 꼬리가 그의 발목을 낚아챘다

  잠시 

  비틀대기는 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끝이 잠깐 흔들렸을 뿐

  그는 다시 한 발은 내딛는 것으로 삶을 대신했다

 

  더러움과 깨끗함은 현실적이어서 명확했다

 

  처음부터 그가 뒤쫓던 것은 등 뒤에 달라붙은

  텅 빈 황무지

  그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절망이기도 했다

 

  그는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가 걸었다 끝없이

      -전문(p. 58-59)

   -------------------------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김조민/ 2013『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수상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동/ 이영란  (0) 2024.03.25
늦더위/ 신덕룡  (0) 2024.03.24
타클라마칸/ 한영수  (0) 2024.03.23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한다/ 정혜영  (0) 2024.03.23
서글픈 택배/ 최해춘  (0) 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