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그 역(驛)이 사라지다/ 정복선

검지 정숙자 2024. 2. 26. 01:48

 

    그 역이 사라지다

 

     정복선

 

 

  봄눈에 아린 꽃눈을 내밀어 본 곳

  그 역에 내린 지 이십여 년 삼삼오오 앉아서

  지나온 철길과 역들의 모래바람을 토해 내던 곳

  태풍에 떠밀려서 뒷걸음칠 때에

  빠르게 떠나가는 기적소리에 하루를 베이던 곳

  무연憮然히 주저앉았다가 다시 행성들을 따라 항해하려던,

  아으, 그 역이 지구에서 영영 사라지다니

  한 량의 나의 정신은 어느 역까지 가야 하나요?

    -전문(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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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가시회_현대향가 제6집『고대의 노래 현대의 노래』에서/ 2023. 12. 20. <문예바다> 펴냄

  * 정복선/ 1988『시대문학』으로 등단시선집 『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 시집 『종이비행기가 내게 날아든다면』『마음여행』『여유당 시편』등 8권, 영한시선집『Sand Relief』, 평론집『호모 노마드의 시적 모험』, <현대향가> <유유>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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