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유령/ 이미산

검지 정숙자 2024. 2. 7. 02:17

 

    유령

 

    이미산

 

 

  저 술렁이는 햇빛은

  우리의 어깨 적시던 그날의 빗줄기

 

  빛의 삼투압은

  눈동자가 눈동자로 전하는 이야기

 

  어쩌다 동시에 시작되는 투신

  서로에게 음각되는 비명

  그리고 각자의 길로 흘러가는 빗물처럼

 

  훗날은 아직 몰라서

  준비한 인사도 전하지 못해

  젖은 어깨로 여백의 완성에 골몰했으니

 

  혼자 즐기는 놀이

  밤새 뒤척이는 한 줌의 미망

 

  그런 날이 있었다고

  어디쯤서 기다리는 우리의 언덕이 있어

  회화나무 그늘에 서 있는 버릇이 생겼다고

 

  저 쏟아지는 빗줄기는

  내게 전하는 그의 목소리

 

  저기요 부르면 홀연 사라지는

  빛

  빛

  빛

   -전문(p. 138-139)

  -----------------------

  *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이미산/ 2006년『현대시』로 등단, 시집『궁금했던 모든 당신』『저기, 분홍』『아홉 시 뉴스가 있는 풍경』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라도 눈길/ 이창호  (0) 2024.02.27
그 역(驛)이 사라지다/ 정복선  (2) 2024.02.26
기사문 엽서/ 이명  (0) 2024.02.07
넉넉/ 윤경재  (0) 2024.02.06
구둔역에서/ 신원철  (0)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