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 이승희 허리쯤에서 꽃 무더기라도 필 생각인지 새삼 잊었던 기억이 몸이라도 푸는지 녹색의 살들이 늘어질 대로 늘어져서 팽팽해지는 오후 녹색의 말굽들이 총알처럼 날아다니며 횡설수설 나를 잡아당긴다 슬플 겨를도 없이 구석을 살아온 내게 어떤 변명이라도 더 해보라는 듯 여름은 내게 베고 누울 저승을 찾으라 한다 구름 사이로 모르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다 누구의 유족인가 싶은데 문상 차림치고는 너무 설레는 표정이다 큰 나무 뒤에서 혼자 늙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엇을 먹는 건지 게워내는 건지 나는 못 본 체 지나간다 그렇게 몇 개의 골목을 지나면서 생각한다 어디쯤에서 그늘을 오려내고 그 자리에 숨어 이 계절을 지나가야 하는지 오려낼 자리마다 더 깊은 변명이 부글부글 끓어도 함께 썩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