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리 석불입상 조선의 탑신에 이끼가 돋아났다 뜬 눈으로 천년을 꼿꼿이 선 석불 내부는 언제나 위태로웠다 나는 지금 없는 아버지와 동거 중이다 쓸모없는 돌로 무엇을 하려는지 세월을 되질하듯 어둠을 캐는 아버지는 더운 내 가슴 한가운데로 불면을 흘려보냈다 수 세기에 걸쳐 깊어진 석불은 상처 입은 마음을 살피는 이 땅의 은자 가까워지는 걸음으로 속세를 향해 귀를 세우고 있다 속수무책 받아들여야 했던 아버지의 자학에서 빠져나왔으나 마음의 빈터마다 눈먼 남루가 극성을 부렸다 머리 꼭대기에 불을 밝힌 아버지는 타는 해를 삼켜버린 돌덩어리, 돌덩어리 숨 막히는 불안을 떨쳐내고 눈을 뜨니 몸 안으로 구름 같은 나비 떼가 날아들었다 생존의 늪을 건너는 참회의 눈물 한 방울로 아버지는 꺼지지 않는 목숨에 닿았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