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 외 1편
최재영
사람이 살지 못하는 못살포라 했던가요
몹쓸 바람 그리 불어 수만 년 전 누군가는
그리움을 꾹꾹 찍어 화석이 되었을까요
그때마다 가슴 들썩이는 심호흡은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에 가 닿았겠지요
한라를 넘어온 북서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내 희고 아름다운 등뼈는
더욱 눈부시게 빛이 났겠지요
끝까지 내몰리고 나서야
다음 생도 도모할 수 있는 법
결마다 서귀포의 파도를 잠재우느라
절벽은 제 가슴 내주었겠지요
서쪽으로 돌아 돌아서 오면
곱게 빗은 머릿결처럼
모래가 아름다운 바닷가 모슬포
등 푸른 날들을 뒤척이면
늑골마다 모래의 지문이 선명해요
지나는 노을이 가만 등을 토닥이는지
날카롭게 여울지는 한 생애
울컥이며 자꾸 푸른 물을 쏟아내고 있네요
-전문(p. 126-127)
-------------
토마토
새빨간 거짓말은 내게 맡겨요
오전과 오후가 빨갛게 익었잖아요
겉과 속이 똑같으니 믿음직스럽지 않나요
세상의 거짓을 모조리 키우는 중이거든요
표리부동하지 않을 것
한 계절 내내 우리들의 좌우명이죠
통속이 붉다 한들 나만 하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형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매력이죠
최근엔 내 모습 흉내 내느라
여기저기서 추파를 던지기도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죠 크기부터 압도적인 걸요
완숙이란 더 이상 붉어지지 않을 때까지
속울음을 익혀야 하는 법
울음의 끝은 메마른 줄기로 마무리해요
오늘도 나를 지나는 태양은
걷잡을 수 없이 맹렬해지네요
그야말로 감정에 충실하다는 증거죠
어때요 감쪽같이 익어버렸죠
당신, 붉은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회의적인가요
제발 나를 좀 믿어주세요
완벽한 불신을 완성해 드릴게요
-전문(p. 30-31)
---------------------
* 시집 『통속이 붉다 한들』 에서/ 2023. 12. 1. <시산맥사> 펴냄
* 최재영/ 경기 안성 출생, 2005년 ⟪강원일보⟫ ⟪한라일보⟫ & 200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루파나레라』『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과꽃 외 1편/ 한현수 (0) | 2023.12.10 |
---|---|
메아리/ 한현수 (0) | 2023.12.10 |
붉은, / 최재영 (0) | 2023.12.07 |
동행 외 2편/ 함기석 (0) | 2023.12.06 |
우리 시대의 시/ 함기석 (0) | 2023.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