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져요
이 신
내가 하루 종일 만들던
스물네 개의 지침이란 거요
한 눈금씩 가리키며 째깍,
검붉은 나이테에 갇히게 되는데요
내 집들이 내 가슴에
점, 점, 점,
응고되는 하얀 혈액 같은 거요
무죄임을 항변하는 누명 쓴 자들이
눈송이처럼 펄펄 탈옥하네요
그러나 모두 울타리를 넘는 것에 불과한 일
당신에게도 있는 녹슨 철대문이라는 거요
지구가 삼백예순다섯 번의 점멸 중에
만들어낸 신호나 윙크 같은 거요
눈동자가 다른 눈동자와 연애하는 봄날에
완고한 아버지는 석고 같던 팔짱을 푸네요
아니에요 늙으신 어머니가
훠이, 사랑스런 딸에게 연분홍 꽃단장을 시키고
콜택시를 부르는 시간이죠
아니, 아니, 행선지 없이 버스를 타고
정처없이 떠나는 일 년만의 외출,
그녀의 가출을 나무라지 마세요
당신 몸에도 초침이 지나간 후 생긴
주름 같은 거요
다시 처녀가 된 어머니가
훌쩍훌쩍 연분홍 레이스를 날리며
몸이 몸을 벗어나요
나무가 나무를,
나이테가 나무를 탈출하는 이 은밀한 방법
따라 하지 마세요
호기심 갖지 마세요
*『시와경계』201-봄호 <신작시>에서
* 이 신/ 전남 안마도 출생, 2005년『시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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