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에 이르다
홍일표
솜사탕을 수국 한 송이로 번안하는 일에 골몰한다
솜사탕은 누군가 내려놓고 간 벤치 위의 따듯한 공기
헐떡이다가 그대로 멈춘
수국은 수국을 통과하며 말한다
하늘에서 엎질러진 구름이 완성한 노래가
나무젓가락에 매달려 반짝이는 동안
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햇살들이 손수건만한 경전을 펼쳐 들기도 한다
땅 속에서 캐낸 태양은 먹기 좋게 식어 있다
붉은 껍질만 잘 벗겨내면
달지 않은 수국 한 송이 꺼내
한 열흘 땅 위의 배고픈 그림자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멀리서 온 바람이 수국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지나간다
*『시와미학』2012-가을호 <대표시>에서
*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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