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_삼천 원이 없어 시인이 된 박재삼 삼천 원이 없어 시인이 된 박재삼(1933~1997, 64세) 정철훈 내가 문학 기자로서 첫 오비추어리를 쓴 것은 박재삼 시인의 부고를 접한 1997년 6월 8일의 일이다. 박재삼 시인은 1995년 백일장 심사 도중 신부전증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해왔고 그를 돕기 위해 노향림 시인이 주축이 된 모금운동.. 작고 시인의 시 2017.01.11
이별을 하느니/ 이상화 이별을 하느니 이상화(1901~1943, 42세) 어쩌면 너와 나 떠나야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눠야겠느냐? 남몰래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 남몰래 이별이 올 줄은 몰랐어라. 꼭두로 오르는 정열에 가슴과 입술이 떨어 말보다 숨결조차 못 쉬노라. 오늘 밤 우리들의 목숨이 꿈결같이 보일 애타는 네 .. 작고 시인의 시 2016.12.25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1948~1991, 43세)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 작고 시인의 시 2016.12.19
이성혁_1990년대 시에 나타난 세기말적인 상상력(발췌)/ 오래된 서적 : 기형도 오래된 書籍 기형도(1960-1989, 29세)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 작고 시인의 시 2016.12.12
권성훈_온몸의 시학과 억압의 리얼리스트(발췌)/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김수영(1921~1968, 46세)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 작고 시인의 시 2016.11.09
이승하_모진 그 세월에 안으로 영근 사랑(발췌)/ 보릿고개 : 이영도 보릿고개 이영도(1916-1976, 60세) 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전문- ▶ 모진 그 세월 안으로 영근 사랑/ 이영도 시조의 다양성과 깊이(발췌)_이승하 사흘 동안 솥에다 무엇을 넣고 끓인 적이 없다. 보리가 .. 작고 시인의 시 2016.11.01
고형진_사유의 샘을 파는 서정시인(발췌)/ 도봉 : 박두진 도봉 박두진(1916-1998, 82세) 산새도 날라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느리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작고 시인의 시 2016.10.29
풀리는 한강가에서/ 서정주 풀리는 한강가에서 서정주(1915~2000, 85세)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흘러 이 햇빛.. 작고 시인의 시 2016.10.24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1914-1946, 32세)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 작고 시인의 시 2016.10.23
장석주_'이름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발췌)/ 꽃 : 김춘수 꽃 김춘수(1922-2004, 82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 작고 시인의 시 201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