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장석주_'이름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발췌)/ 꽃 : 김춘수

검지 정숙자 2016. 10. 17. 18:22

 

 

   

 

   김춘수(1922-2004, 82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전문-

 

 

  '이름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발췌)_장석주 

  '이름들'의 세계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널리 애송되는 김춘수의 「꽃」에서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뚫고 나온다. 이름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고유한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를 환대함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구절에서 '꽃'은 아름다움으로 겪는 타자적 인식을 가리킨다. 이때 이름은 본질의 외피가 아니라 본질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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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6-10월호 <권두시론>에서

   *  장석주 / 1975년『월간문학』으로 등단, 1979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몽해항로』외. 평론집『시적 순간』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