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풀리는 한강가에서/ 서정주

검지 정숙자 2016. 10. 24. 01:01

 

 

    풀리는 한강가에서

 

   서정주(1915~2000, 85세)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흘러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나물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또 무엇하러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서정주(1915.5.18.~2000.12.24.)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堂).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화사집』(1941),『신라초』(1960),『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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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담 』2016-가을호 <다시 읽고 싶은 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