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권성훈_온몸의 시학과 억압의 리얼리스트(발췌)/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검지 정숙자 2016. 11. 9. 00:01

 

 

 

    그 방을 생각하며        

 

    김수영(1921~1968, 46세)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고

  말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歷史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意志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쓴 담뱃진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落書를 잃고 期待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전문, (1960.10.)

 

 

  온몸의 시학과 억압의 리얼리스트(발췌)_ 권성훈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는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는데에도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라는 자폐적 증상을 보인다. 자폐적 증상은 "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 나는 그 노래도 그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고 / 말았다"라고 심화된다. 다만 시인의 "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는 화자의 방에서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남아 있다.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버린 순간 통제할 수 없는 절망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마지막 연에서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라고 했을 때, 이는 이 시의 화자가 혁명에 대히 잠정적으로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은 성취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욕망이 수반하는 고통과 증후에 대한 항복이며 토로이다. 시인의 좌절은 자유에의 욕망과 현실에의 고통적 간격을 채우지 못해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한 주체할 수 없는, 자폐적 분리 상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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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시와표현』2016-11월호 <한국 시단의 별들>에서

 * 김수영/ 1921.11.27.(서울) ~1968.6.16. (향년 46세), 연희전문학교 중퇴 외 1건, 1945년 문예지 『예술부락』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시작됨, 대표작 「거대한 뿌리」「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풀」, 시집 『달나라의 장난』『거대한 뿌리』『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외,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외, 2001년 금관문화훈장 외 2건, 평화신문사 문화부차장,

 * 권성훈/ 2013년 『작가세계』로 평론 등단. 시집『유씨 목공소』외.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외. 편저『이렇게 읽었다-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외. 현 경기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