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하느니
이상화(1901~1943, 42세)
어쩌면 너와 나 떠나야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눠야겠느냐?
남몰래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 남몰래 이별이 올 줄은 몰랐어라.
꼭두로 오르는 정열에 가슴과 입술이 떨어 말보다 숨결조차 못 쉬노라.
오늘 밤 우리들의 목숨이 꿈결같이 보일 애타는 네 맘속을 내 어이 모
르랴.
애인아 하늘을 보아랴 하늘이 까라졌고 땅을 보아라 땅이 꺼졌도다.
애인아 내 몸이 어제같이 보이고 네 몸도 아직 살아서 내 곁에 앉았느냐?
어쩌면 너와 나 떠나야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눠야겠느냐?
우리 둘이 나뉘어 생각하며 사느니보다 차라리 바라보며 우는 별이 되
자!
사랑은 흘러가는 마음 우에서 웃고 있는 가비여운 갈대꽃인가.
때가 오면 꽃송이는 고와지고 때가 가면 떨어지고 썩고 마는가?
남의 기림에서만 믿음을 얻고 남의 미움에서는 외롬만 받을 너이었더
냐.
행복을 찾아선 비웃음도 모르는 인간이면서 이 고행을 싫어하는 나이
었더냐.
애인아 물에다 물 탄 듯 서로의 사이에 결계가 없던 우리 마음 우으로
애인아 검은 그리매가 오르락내리락 소리도 없이 어른거리도다.
남몰래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 우리 몰래 이별이 올 줄은 몰랐어라
우리 둘이 나뉘어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피울음 우는 두견이 되자!
오려무나 더 가까이 내 가슴을 안으라 두 마음 한 가락으로 얼어보고
싶다.
자그마한 부끄럼과 서로 아는 믿음 사이로 눈감고 오는 방임을 맞이
하자.
아 주름잡힌 네 얼굴 이별이 주는 애통이냐? 이별을 쫓고 내게로 오
너라.
상아의 십자가 같은 네 허리만 더위잡는 팔 안으로 달려만 오너라.
애인아 손을 다고 어둠 속에도 보이는 납색의 손을 내 손에 쥐어다고.
애인아 말해다고 벙어리 입이 말하는 침묵의 말을 내 눈에 일러다고.
어쩌면 너와 나 떠나야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눠야겠느냐?
우리 둘이 나뉘어 미치고 마느니 차라리 바다에 빠져 두 마리 인어로나
되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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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담』 2016-겨울호 <다시 읽고 싶은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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