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파트의 글 237

이숭원_비평집 『탐미의 윤리』에서/ 고절(枯絶) : 조정권

고절枯絶 조정권 꼿꼿합니다. 꽃 떨구고 고개 쳐든 꽃대들이 가을 내내 여위다가 설한풍 속에서도 안 숙입니다. 언 연못 말라 가도 숙이지 않는 저 꼿꼿한 고개 얼음 속에서 산 채로 캐 시 쓰는 책상 앞에 켜놓으면 얼마나 환하겠습니까. -전문- ▶견인의 탐미주의, 그 결빙의 여정_조정권의 시세계(발췌)_ 이숭원/ 문학평론가 내용은 단순하다. 나는 이 시가 평생을 고절孤節의 탐미주의로 보낸 시인이 생의 한 고비인 고절枯絶의 단계에서 후배 시인에게 주는 당부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혼탁 속에 빙산 철벽을 꿈꾸는 시를 썼고, 그 꿈이 누더기 같은 현실 속에 좌절될 때, 꽃잎 떨군 꽃대가 말라가면서도 여전히 꼿꼿한 모습을 보이듯, 견인의 자세만은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탐미의 길이 실패하더..

참나리꽃의 전설이 된 시인에게/ 정숙자

中 참나리꽃의 전설이 된 시인에게 정숙자 김희준 시인, 지금 어디쯤 가고 있나요? 노랗고 밝은 빛을 따라가야 해요. 멋있게 보일지라도 푸르스름하거나 안개 낀 길로 가면 안 된다, 고 『이집트 사자의 서』에 쓰여 있어요. 그건 습한 곳이라고 합니다··· 희준 시인, 사랑했어요. 지금도 사랑하고 아끼고··· 앞으로도··· 꼭 노랗고 밝은 빛을 따라가세요.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두려움이 일어도 무서워하지 말고··· 모든 소리는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거랍니다. 꼭 기억하세요. 2020. 7. 27. 정숙자 드림. ^^~ 김희준 시인, 제가 보낸 카톡 읽으셨지요? 아직도 제 휴대폰 속 저 당부 옆에는 ‘1’자가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희준 시인의 능력은 이미 지구인의 문화를 훨씬 뛰어넘었을 테니까 다 읽고 또..

안수환『주역시학』/ 부분들(p-202, 133, 81, 28, 210~211)

내 마음속 물결이 잔잔히 출렁거리도록 안수환 냇물은 호수와는 다르게 물이 겹치고 겹치면서 흘러간다. 그침이 없이 흐르는 이 물결을 습감習坎이라고 한다. 군자는 이 모양을 보면서 부단히 덕행을 쌓아가면서 남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한다(수천지 습감 군자 이 상덕행 습교사 水洊至 習坎 君子 以 常德行 習敎事 「괘상 卦象」). 냇물은 흐르고 또 흘러가니 살아 있는 물이다. 눈을 뜬 물이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또 흘러가는 물결을 보라. 먼 곳 우주의 변형들까지 여기 물가로 내려와 그 시냇물의 속삭임을 듣고 있지 않는가. 군자가 보여주는 상덕행常德行의 행실은 그 뜬 눈의 물결과도 같은 것이었다. 남을 가르치는 군자의 입술에도 그 시냇물의 맑은 숨소리가 묻어있지 않겠는가. 군자는 누구인가. 그는 냇물을 바라..

김어제_ 『쿼런틴』「코로나 블루」「체크리스트」「후유증」

코로나 블루 김어제/ 프리랜서 일명 '코로나 블루'라고 불리는 우울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장기간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고, 정상적인 사교 생활을 할 수 없어서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것을 뜻한다. 또한 불경기로 인한 수입 감소, 실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감염되는 것에 대한 불안,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 매일같이 반복되는 뉴스 등이 모두 영향을 끼친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이 빠른 시간 내에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조심해도 나만 유난떠는 사람이 되고 확진자는 꾸준히, 늘어난다. 이런 상황이 빠르게 종결된다면 좋겠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한다. P가 아픈 동안 나도 불안, 우울, 공황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김어제_『쿼런틴』「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부분)

中 기후 변화와 인수공통감염병, 다음 펜데믹 김어제/ 프리랜서 8월이면 으레 찜통이어야 할 한국에 40일 넘게 장마가 지속되고 있다. 8월 초에 이런 날씨는 처음 본다. 그 탓에 정부가 자원 분배를 할 새도 없이 전국이 동시에 물에 잠겼다. 해외도 다를 바 없다. 중국, 일본, 미국, 인도 할 것 없이 모두 물에 잠겨 있다. 한 트위터 유저가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환경운동가, 2003~)를 두고 "노아에 버금가는 신의 메신저"라고 표현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러한 기후 변화도, 지카바이러스도, 아마 코로나19와 그 다음에 올 전염병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과 동물 모두 걸릴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들은 결국 인간이 자연을 무리하게 침범한 결과이다. 효율성과 이윤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이 ..

최종고_『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 3』/ 프란체스카 도너 리

이승만 대통령의 오스트리아인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리 Francesca Donner Rhee, 1900~1992, 92세 최종고(崔鐘庫) 『대통령의 건강』(1988)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2010) 나는 프란체스카 도너 리(Francesca Donner Rhee, 1900-1992, 92세) 여사를 한 번 뵈었다. 1989년인가 이화장에 세배드리러 갔는데, 잠시 한국어와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연로하신데도 소녀같은 웃음을 지으셨다. 『이승만대통령휘호집』에 사인을 해서 선물로 주셨다. 그 후 다시 이화장에서 한국인물전기학회의 주최로 며느님 조혜자 여사가 에 대한 발표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의 유품 등을 관람하고 다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대통령의 영부인이라고는 상..

단재 신채호의 '민족' 호명(발췌)/ 서범석

단재 신채호의 '민족 호명(발췌) 서범석/ 시인 · 문학평론가 · 대진대 명예교수 역사가이며 독립운동가, 그리고 사상가였던 신채호(申采浩, 1880~1936, 56세) 선생은 단재丹齋라는 아호에서 보듯이 오직 민족에 대한 '붉은 마음[丹心] 하나로 생애를 물들이고 순국한 인물이다. (p. 128) 시문학 작품들과 '민족' 단재가 세수할 때, 허리와 고개를 굽히지 않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일제 앞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어느 방향으로도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옷이 다 젖어도 꼿꼿이 서서 물을 얼굴에 찍어 바르며 세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를 하든지 문학을 하든지 그 무엇을 하든지 오직 '민족'이라는 자장 안에서 양심의 명령에 따라 단심丹心을 지켜낸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 텍스트들 ..

왜 단시조인가?/ 유자효

왜 단조인가? 유자효/ 시조시인 한국 시가의 본류는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시조로 이어 온다. 시조는 고려 중기에 그 형식이 3장 6구로 정착되었다. 조윤제 박사의 「시조자수고」(1930. 11 · 신흥)에서 시조의 기본형이 초장 3 · 4 · 4(3) · 4, 중장 3 · 4 · 4(3) · 4, 종장 3 · 5 · 4 · 3이나 상당한 신축성이 있다고 정리하였다. 문자로 정착된 최초의 시조는 역동 우탁(1263~1343, 80세)의 「탄로가」 2수이다. 그 가운데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는 널리 불려 춘향전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패러디되었다. 「백발가」에 "오는 백발 막으려고 우수에 도끼 들고..

독자와 저술 : 니체 / 번역 : 강두식

독자와 저술 니체(독일 1844-1900, 56세) 기록된 일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오직 자기의 피로 적은 바로 그것이다. 피로 적으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정신임을 알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나는 나태한 독자를 증오한다. 독자를 염두에 두는 자.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미 독자를 위해 하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1세기를 더 살라고 해보라. 그렇다면 그때는 정신이 발산하는 악취뿐이다. 누구나 독서를 해도 무방하다는 것, 이런 일이 계속되면 쓴다는 것 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그것마저 절멸하리라. 일찍이 정신은 신이었다. 그런 뒤에 그것은 인간으로 화化해버렸다. 이제 와서 그것은 어리석은 천민이 되고 말았다. * 냉담하라, 조소하라, 용감하라, 지혜가 우리에게 바라는 ..

해리 김_『페리파토스』「안전빵을 거부하라」

안전빵을 거부하라 해리 김(Harry Kim)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빵은 '안전빵'이다. 이 빵은 네 영혼을 부패시킨다. 네 영혼이 썩으면 네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고갈되어 너는 평생 거지근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들아, 맛없는 풀빵을 먹어도 좋으니 안전빵은 무조건 거부해라. - Harry Kim, 『아들아』, 성안당, 200쪽 어제(6월 13일) 오전 고원에 있는 지체들에게 줄 선물로 망고 100개를 사서 차에 싣고 리장을 출발한 우리는 자동차로 네 시간을 달려 고도 3,400미터의 샹그릴라(Shangri-La)에 도착했다. 샹그릴라는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가공의 장소이다. 샹그릴라는 소설 속에서 쿤룬(Kunlun)산맥의 저쪽 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