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117

양경언_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 김민정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김민정 처음 극장이란델 가서 본 영화가 「개 같은 내 인생」이었다. 하필 그랬다 중학교 1학년을 단체 관람시킨 도덕 선생님은 전교조였다. 하필 그랬다 한 번 봤으면 됐지 싶은 영화를 보고 또 보러 다니는 사이 선생님은 이미자도 아니면서 섬마을 선생님으로 불..

김윤정_ 시 치료의 원리와 방법『위상시학(位相詩學)』/ 검은 사이프러스 숲 : 주영중

검은 사이프러스 숲 주영중 배꼽에 거대한 입이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붉은 입이 웃는 일이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 어서오세요, 이 검고 칙칙한 땅의 어둠 속으로 아름다운 즙들로 우린 하나 될 수 있을 거예요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눕고 있으니, 무덤들 위에서 검은 머리카락들이 ..

김용직 『현대 경향시 해석 / 비판』(발췌)/ 우리 오빠와 화로(火爐) : 임화

우리 오빠와 火爐 임화(1908-1953, 45세) 사랑하는 우리 오빠 그만 그렇게 위하시든 오빠의 거북紋이 火爐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조그만 旗手라 부르든 영남이가 地球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時間을 담배의 毒氣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紋이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火적가락이 불상한 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또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일흔 男妹와 같이 외롭게 벽에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드러가실 그날 밤에 연겹허 마른 卷煙를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아렀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工場에서 도라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新聞紙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

금은돌_ 문학 읽기 『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까』(발췌)/ 공모 : 정재학

공모共謀 정재학 죽은 지 이틀 만에 시체에서 머리카락이 갈대만큼 자라 있었다 나와 그림자들은 시체를 자루에 싸서 조심조심 옮겼다 그림자 하나가 울컥했다 죽이려고까지 했던 건 아닌데…나머지 그림자들이 그를 달랬다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죽었을 거야차 트렁크 열고 시동 좀 걸..

이덕주_시 비평집 『톱날과 아가미』(발췌)/ 물계자의 노래 : 강영은

물계자*의 노래 강영은 나는 어느덧 지렁이처럼 거미처럼 무엇보다 지네처럼 풀밭을 지나는구나 긍정과 부정의 수많은 다리로 흔들리는 몸을 건너는구나 어둡고 습한 곳에 사는 공벌레처럼 나는 또 접이식 몸을 둥글게 말아 아침 화단가에 흩어지는 그늘을 딛고 잡초를 뽑는구나 썩기 ..

강기옥_평론집 『느림의 계단에서 읽는 시』(발췌)/ 고추밭 : 최철호

고추밭 최철호 이랑마다 탐스런 고추 주절주절 열린 고추밭을 보면 먼 길 가신 어머니가 아른거린다 고추농사 만큼은 유난히 해마다 동네 으뜸 고추왕이라 칭송이 자자하던 어머니 당신의 고추농사는 여기저기 흩어진 자식들에게 질 좋은 고출 먹이고픈 일념에 여름 땡볕 따윈 아랑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