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강기옥_평론집 『느림의 계단에서 읽는 시』(발췌)/ 고추밭 : 최철호

검지 정숙자 2019. 1. 31. 02:47

 

 

    고추밭

 

    최철호

 

 

  이랑마다 탐스런 고추

  주절주절 열린 고추밭을 보면

  먼 길 가신 어머니가 아른거린다

  고추농사 만큼은 유난히

  해마다 동네 으뜸

  고추왕이라 칭송이 자자하던 어머니

 

  당신의 고추농사는

  여기저기 흩어진 자식들에게

  질 좋은 고출 먹이고픈 일념에

  여름 땡볕 따윈 아랑곳 없으셨다.

 

  검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

  땀방울 주르르 흘러

  삼베적삼 흠뻑 적셔도

  흡족한 미소 머금던 어머니

 

  장마가 그치고

  고추잠자리 날개 말리던 날에도

  어머닌

  숲처럼 우거진 고추밭 이랑에 엎드려

  붉게 물든 빛 고운 고출 따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전문, 시집『호수에 비친 그림자』中

 

 

  ▶ 자연주의적 사랑의 서정시(발췌)_강기옥

  비유법 중에 암유暗喩를 영어로는 은유隱喩와 같은 메타포(metaphor)라 하지만 이 시에서는 굳이 암유라 해야 맛깔스럽다. 고추밭의 고추는 칠리(chili)의 고추를 뜻하나 내면적으로는 아들들을 가리킨다. 3연에서 자식들에게 질 좋은 고추를 먹이기 위한 일념이렀다고 비켜 가지만 정작 남보다 잘 가꾼 고추 농사는 남못지않게 자식 잘 키워준 어머니의 정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은유보다 더 깊은 의미의 어감을 주는 암유라 해야 어울린다. 그렇게 감추어 표현하고픈 어머니의 정성의 마지막 연에 나타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일방적일 수 있으나 자식도 그에 못지않게 부모를 사랑한다는 것을 밝혔다. 늑 4연에서 '그것도  검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 땀방울 주르르 흘러/ 삼베적삼 흠뻑 적셔도/ 흡족한 미소 머금던 어머니'라고 밝힌 어머니의 사알에 대해 1연에서는 주절주절 열린 고추밭을 보면/ 먼 길 가신 어머니가 아른거린다'는 고백으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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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기옥 평론집『느림의 계단에서 읽는 시』에서/ 2018. 12. 26. <가온> 펴냄

  * 최철호/ 전북 김제 출생,『문학과현실』로 등단, 시집『내 작은 영토의 전쟁사』『호수에 비친 그림자』등

  * 강기옥/ 시집『빈자리에 맴도는 그리움으로『그대가 있어 행복했네』등, 평론집『시의 숲을 거닐다』등, 역사 인문교양서『문화재로 포장된 역사』『국토견문록』등